<인터뷰>미당 서정주 전통사상.풍류 뿌리 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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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원로시인 未堂 徐廷柱씨(78)가「國仙사상시문학연구회」를 만들어 한국 전통사상과 풍류의 연구.보급에 나섰다.그와 朴在森.羅泰柱.李聖善.宋秀權.張仁城씨등 제자시인 50여명이 지난달 21일 모임을 갖고 결성한 이 연구회는 국선사상연구와 홍보,우수문학 번역및 출판,한국전통시풍 진작을 위한 문학상 제정,국민문학기념관 건립,문학강좌 개설 등의 사업을 펼치게 된다.사업을 위한 재원은 회비와 문화예술계.학계.불교계등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仙이란 한자풀이 그대로 山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태백산.백두산등 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사는 나라가 우리나라 아닙니까.또하늘에서 내려온 밝은 빛이 곧 풍류인데 그 풍류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노래해온 것이 우리 민족이란 말입니다.그 풍류와 仙이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으로 흘러들어 동양사상의 원류가 된 것입니다. 仙을 흔히 道敎 등에서 찾는데 뭐가 거꾸로 돼도 많이 거꾸로된 것같아요.단군.박혁거세등에 얽힌 우리의 신화나 설화,「삼국유사」같은 우리의 전적에서 찾아내야지요.』 불교나 도교에 기댄 禪詩風 시가 유행하는 한편으로 실험시계열의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고있는 시단에 仙과 풍류로 우리의 정신과 멋을 불어 넣으며 다시「未堂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연구회의 결성은 未堂이 유달리 춥고 외로웠던 지난 10여년을털어버리고 한국시의 고향,문단의 원로로서「복권」의 발걸음을 내디디는 계기가 될수 있을 법도 하다.
1936년 東亞日報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未堂은 반세기이상 정력적인 詩作활동을 펴며 한국어와 한국정서.사상의 멋과 깊이를더해 왔다.
그의 시를 흠모하고 배우려는 문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한때는「未堂政府」「未堂학교」란 말까지 생겨나기도 했다.그러던 그가5共이 들어설 무렵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全斗煥씨 지지발언을 한뒤로 문단과 世人들의 경원속에 지금까지 줄곧 춥 고 외로운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未堂은『정치는 정치꾼들이 해야하고 시인은 시만 써야 하는데 뭘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혼쭐났다』는 말을 자조하듯 하곤 한다.
명절때면 붐비는 문인들로 신발 벗어놓을 자리가 없던 그의 집은 근래 10여년이 늘 그랬듯 올 추석에도 사람 그림자가 별로없어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全斗煥씨 지지발언을 해준 대가로 未堂은 청와대로부터「범세계예술인회의」라는 이름 뿐인 조직과 함께 약간의 활동비를 받았다.
대가는 그것이 전부였지만 반대급부는 의외로 컸다.그는「末堂」이니,「노망 들었다」느니 하는 내외의 거센 손가락질 을 당하며 철저히 외로운 말년을 보내야했다.부인 方玉淑씨(74)는 이런 매몰찬 인정에 질려 가뜩이나 뜸한 전화조차도 차단해버리는 사람기피증에 걸려 버렸다.거기에다 디스크까지 겹친 부인을 간호하며사는 未堂에게 全후보지지발언은 反共시 절 공산당부역보다 더 큰멍에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대가 어쩔수 없었다고나 할까요.잃은것도 많았지만 사람살이쓰라린 경험도 겪었으니 득도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요.이제 열심히 더 공부해 하늘과 땅을 주재하면서 또 함께 멋있게 살아가는 국선사상을 수집.정리.연구하고 그런 시를 쓰 겠습니다.한 경지에 머물지 않고 늘 아주 많이 공부해 새로운 경지를 넘보는게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청산과 화합의 문민시대를 맞아『스승이 사형대에 오르더라도 제자가 배반할수 없는게 인륜의 도리』(宋秀權시인),혹은『한국문학의 깊이와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분은마땅히 복권돼야 한다』(鄭鎭圭시인)는 제자.후배문인들의「복권의지」로 未堂이 문단원로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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