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무관심/「두 대통령」사태/「포고령」이후 러시아 현지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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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치솟는 물가걱정… 안정바라/언론역시 보­혁­중립으로 갈려/솔제니친 “의회 당장 해산해야”
○…보수파가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추대,러시아가 「한집안 두 대통령」이란 기묘한 정국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2일 모스크바시내 중심가를 돌아보며 이에 대해 『별로 심각한 일은 아니다』 『아마추어적인 것』이라며 여유를 과시했다.
시내에서 가두연설을 가진 옐친 대통령은 시종 파안대소를 거듭,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면서 『나는 군부와 지방정치지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상황을 완벽한 통제하에 두고있으며 현 정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출.
그는 이어 『러시아 시민들은 12월에 있을 최고회의 또는 새로운 의회선거에 대비해달라』고 호소한 뒤 『어떠한 폭력도 반대한다. 모든 것을 평화적으로 유혈사태없이 해결하길 원한다』고 강조.
○…옐친 지지파와 반옐친파간의 물리적 충돌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나 대다수 모스크바시민들 사이에는 비상시국에 무관심하거나 평온한 분위기가 지배적.
구 소련 공산당시절이래 기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냉담한 태도를 보여온 대부분의 러시아 시민들은 『제발 이번 사태를 마지막으로 권력투쟁이 종식되길 바란다』며 안정을 호소.
시민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대통령이 둘이든 셋이든 관심없다』며 1년이상 끌어온 싸움으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져 애꿎은 서민들만 골탕먹었다고 개탄하고 다가오는 월동준비에나 신경쓰겠다는 태도.
모스크바대학의 한 교수는 『현재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문제다. 물가는 매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생활수준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푸념.
○…러시아사태에 대해 이곳 언론들 역시 개혁·보수·중립 등 세갈래로 분열.
개혁파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22일 1면 「최소한의 전환으로 최대한의 혁명」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옐친 대통령이 헌정위기 극복을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논평. 국영 TV들도 공동성명을 통해 「옐친조치 무조건지지」를 표명,최고회의측에 일격.
반면 대표적인 보수계 신문 프라우다지는 아예 옐친 대통령의 비상조치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않고 예고르 가이다르의 재기용과 옐친의 호화주택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17년 제정러시아와 60년대 및 80년대 소련시대의 사회상을 비교,은근히 「소련부활」을 부추기는 기사를 크게 취급.
군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지는 옐친의 조치와 최고회의의 대응에 대해 일체 언급회피. 한편 한 러시아기자는 「악법도 법」이라며 옐친의 조치는 헌법위반이므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
○…재계·종교계·학계 등 각 단체들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보수냐,개혁이냐」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내전으로 확산될까 전전긍긍.
러시아 중앙은행의 한 고위층은 22일 『곧 이사회를 소집,이번 사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면서 『중립을 선언한 군과 비슷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며 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무기는 돈이라는 사실』이라고 언급.
러시아 정교회의 정신적 지도자인 총대주교 알레크시 2세는 내전발발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정치적 위기가 유혈사태없이 해소돼야 한다고 촉구.
그는 북미지역 러시아정교회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1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지금까지 이미 우리는 구소련과 유고에서 많은 피가 흘려지는 것을 보아왔다』며 이같이 천명.
러시아 학술원에서도 알렉산드르 안드레예프 부원장이 『의회해산조치는 정치적 혼란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잔기르 케리모프 국가법원 연구원장은 『올바른 선택이나 헌법의 뒷받침을 받지못한 만큼 불행한 결과가 뒤따를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등 갈팡질팡.
○…러시아의 저명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옐친 대통령의 조치가 발표되기 직전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의회를 비난하고 옐친 대통령을 용기있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워 눈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소련시절 반체제인사로 유명했던 솔제니친은 22일자로 실린 이 인터뷰에서 옐친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는 그가 집권하자마자 의회를 해산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친옐친 성향을 극단적으로 표출.
그는 『러시아의회가 자유선거를 통해 구성된 것이 아니다』라며 『당장 해산시켜야 한다』고 강도높게 발언해 주목.
○…블라디미르 슈메이코 부총리는 22일 옐친 대통령의 조치에 반발하는 의회 의사당에 전기·물·가스공급을 끊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
슈메이코 부총리는 옐친 포고령에 반대하는 이 기관에는 「세련된」방법이 강구돼야 한다면서 이같은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인테르팍스 통신은 부연.<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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