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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추석 썰렁해진다/선물 대신 「마음」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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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정여파… 의정보고서로 대신/「YS 멸치」·「DJ 김」등 사라질듯
사정한파와 실명제 실시이후 정치권의 추석 풍속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여야의원들은 명절 선물금지를 규정한 지난 7월의 국회윤리 규범을 들어 아예 선물보내기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마지못해 선물을 할 경우라도 인사치레 정도다. 그러다보니 예년엔 선물보따리 꾸리기 등으로 부산하던 의원회관이 오히려 썰렁한 분위기다.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전반이 허례줄이기 분위기인데다 각 정당 지도부가 다시 다잡고 있다. 민자당의 황명수 사무총장은 의원총회·당무회의 때마다 선물금지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도 17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추석선물 금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 때문에 「YS 멸치」 「DJ 김」 「이민우 계란」 「이기택 수저」 「김상현 엿」 등 정치인 고유의 오랜 선물 대명사들이 정치권에서 서서히 퇴장할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여야의원들의 올 추석선물 관련 유형은 대략 세가지. 눈감고 선물을 포기하는 경우와 편지·의정보고서 등 「문건」으로 대신하는 사례,성의만 표시하는 수준의 간단한 선물이 주류를 이루며 개중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경우도 눈에 띈다.
한 민자당의원은 선물용으로 찻잔을 다량 준비했으나 정치권에 차가운 사정바람이 불면서 결국 배포를 중단,창고속에 쌓아두고 있다.
조세형의원(민주)은 3백만원 상당의 순창고추장을 돌렸던 지난해와는 달리 『돈 빌리러 다니기에 급급한 처지』라며 선물마련을 포기했다.
초선인 노승우의원(민자)은 선물을 보내지 못하게한 국회 윤리규범과 돈안쓰는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 편지로 당원 선물을 대신할 계획이며,김형오의원(민자)도 한가위 안부편지로 때운다는 생각이다.
허경만 국회 부의장(민주)과 김윤환·박희태의원(민자) 등도 어차피 큰 선물을 못할 바에 안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아래 안부편지·카드로 대체했다.
오장섭(민자)·박양무(민주)의원 등은 추석을 전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점을 십분 활용,선물 대신 의정보고서를 돌리기로 해 「홍보」도 겸하는 일석이조의 아이디어를 짜냈다.
정대철의원(민주)은 평소 교분이 있는 유명 서예가가 써준 「생각」이라는 한글휘호를 인쇄해 지구당 간부와 대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다. 민주당이 김상현의원은 7천여명의 당원들에게 전남특산 엿,넥타이 등을 선물을 보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2백여명의 지인들에게만 젓갈·진도 홍주 등을 선물키로 했다. 특히 이 선물은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최렬)이 「우리 토산품 사주기」 차원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그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도 있다는게 김 의원측의 설명.
제정구의원(민주)은 지난 9일 후원회 행사에서 모금한 기금중 3백만원을 떼어 고아원·양로원을 방문할 계획이며,김정수·김한규·박종웅(민자)의원 등도 사회복지시설을 위문할 생각이다. 김용태의원(민자)은 지역구(대구북)내의 집배원·환경미화원 등에게 식용유를 선물키로 했다.
의원들은 이처럼 매년 해오던 선물을 안하거나 바싹 줄인데 대해 자금절약 측면에선 다행스럽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찜찜해 하는 모습이다.
한 민자당 초선의원은 옆지역구의 동료의원이 술병을 돌리겠다는 얘기를 듣고는 선물을 않겠다는 당초의 「의지」가 흔들린다고 했다. 결국 유권자들의 의식변화가 모처럼 일기 시작한 절제분위기의 주요한 관건이 되는 셈이다.
경실련은 최근 이와 관련,정치인들의 추석선물 안보내기 감시에 나서기로 하는 한편 「선물안주고 안받기」 등 깨끗한 정치 결의모임을 계획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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