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버릇 못버린 야당/최훈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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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거의 청산없이는 개혁은 없다.』
이런 명제가 성립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민주당이 정기국회 초반을 파행시키는 명분이 되고 있다.
정기국회가 개회식(10일)만 치른채 계속 갈 지자 걸음을 걷고 있는 까닭은 간단하다. 민주당이 국정조사기간 연장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증인채택을 국회의사일정 협의와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힘없는 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구사해온 전략이 현안과 국회의사일정의 연계였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의 경우도 이해가 안가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에 또 그런 구태를 재현한 것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선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이번 국회는 1백30여건의 각종 개혁입법처리는 물론 실명제 후유증의 보완,경기부양대책 등 산적한 민생현안을 다뤄야 한다. 그간 추진돼온 개혁의 중간점검과 함께 민주당이 강력히 제기한 개혁의 제도화를 해야할 중차대한 국회다. 일정문제로 허비해선 안될 까닭이다.
그럼에도 김태식 민주당 원내총무는 11∼12일 세차례의 여야 총무접촉이 결렬될 때마다 『국정조사 마무리가 안된 상태에서 게혁입법에 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과거 청산도 물론 중요하다. 민주당이 당력을 집중해 과거청산에 매달리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과거청산이 시급한 개혁의 제도화,미래의 민생·경제문제를 다듬어야할 국회의사일정과 왜 「교환조건」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민주당이 설득력있는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국정연설에 대한 대응도 다분히 억지론리격인 구석이 있다. 임시국회 때마다 민주당은 『미국대통령도 국회연설을 하는데 우리대통령은 왜 국정연설을 안하느냐』고 따졌다.
민주당은 프랑스 대통령의 15일 국회연설은 군소리없이 받아들이면서도 김 대통령 연설에 대해선 『국회의 합당한 절차를 밟아야 할 사안』(박지원대변인)이라고 거꾸로 발목을 걸어왔다. 시기와 정황에 따라 같은 사안을 놓고 이현령비현령식의 해석과 주장을 해서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13일 민주당이 뒤늦게나마 연계전략을 해제한 것은 평가받음직하다. 그러나 제1야당이 보다 사려깊고 세련되게 전략을 세워야 더 한층 국민의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점을 지도부는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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