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정치하던 시대 끝났다(재산공개 파장: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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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실명제 맞물려 제2사정한파 “불보듯”/계보 퇴색… 정책개발만이 살아남는길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공직자의 재산 재공개로 정치권 개혁의 진행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실시에 이어 정치인들의 알몸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투명한 정치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개혁의 요체는 한마디로 돈 안드는 깨끗한 정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재상공개 자체가 정치개혁의 목표일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 부패구조의 척결이라는 사정 의지까지 담겨져 있어 정치권 안팎의 변화가 클 것임이 분명하다.
우선 이번 2차 재산공개는 정치권의 부분적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일부인사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청와대로부터 이에 대한 정밀조사 방침이 들려온다. 더욱이 몇몇 의원들에 대해서는 도덕성 시비마저 일고 있다. 지난 봄 공개때 누락됐던 재산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번 공개가 법적 강제력이 없는 것이어서 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재산공개가 이뤄진후 김영삼대통령은 면밀히 실사를 통해 권력의 힘으로 치부하는 풍토를 개혁차원에서 없애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권력형 축재에 대한 강한 척결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김 대통령은 최근 민자당 중진 의원들과 민난 자리에서 정치권 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회 각 분야가 변화하고 있는데 정치권만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게 김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김 대통령의 의지를 감안할 때 정치권에 제2의 사정한파가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다.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치문화·관행 등 정치권 전반에 걸친 대수술이 시작되고 있다. 수술을 하다 보면 어차피 출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정치권 사정가능성을 내다봤다.
정치권 사정과 그에 따른 인물교체는 외형적 변화에 불과하다. 금융실명제와 맞물린 재산공개는 이보다 더 큰 정치권의 질적변화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돈가지고 하는 정치시대가 끝났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이란 명목으로 기업인 등으로부터 크고 작은 돈을 받아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검은 거래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기업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사례마저 없지않았다.
이처럼 손쉽게 자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선거때만 되면 금품선거로 치달았고 또 이를 위해 임기중 많은 자금을 끌어 모아야 했다.
말하자면 부패의 악순환이 계속됐던 셈이다. 그렇다고 이를 별로 문제삼지도 않았다. 필요악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된다. 거액을 한꺼번에 줄 사람도 없으려니와 의원들 스스로도 요구할 수 없다. 금융실명제와 재산공개 때문이다.
최근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줄을 잇고 있는 후원회 결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금 조달을 위한 의원들의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씀씀이도 예전보다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또 다른 정치권의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바로 계보정치의 퇴색이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의원들을 거느리던 계보 보스로서는 더 이상 자금조달이 용이하지 않아 장악력이 그만큼 약화될 것이 뻔하다. 당장은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충성심」이나 연대의식이 떨어질 것이란 얘기다.
이로 인해 앞으로의 선거전은 인물이나 정책대결이 될 가능성이 많다. 민주당의 이해찬의원은 『계보를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이나 선거는 의미를 잃고 있다』며 『의원별로 전문분야를 개척해 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른 정치권 변화에 역설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자칫 재력있는 인사들의 정계 진출을 부추길 수 있는 반면 참신한 새 인물의 등장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성 정치인들 중에서도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견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개혁을 위해선 돈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돈이 안드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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