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축재」는 공직서 추방(재산공개 파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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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속없이 10억넘으면 일단 문제/총액보다 형성과정 납득 시켜야
공직사회의 재산보유 현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금까지 공직자의 재산형성 과정은 한번도 조직적으로 검증받지 않았다. 당연히 그에 따른 정당성은 논외로 치부됐다. 몇몇 수뢰사건 등의 경우 사법처리를 당한 이외에는 적어도 공직자가 재산형성 과정과 방법에 관련해 법적·사회적 검증과정을 거친적이 없다. 그래서 다수 공직자들이 일반의 경우처럼 땅투자에도 손을 댔고 서화·골동품에도 관심을 보였으며,아파트 열풍이 불며 그에 뒤질세라 열심히 쫓아갔다. 그런 사정은 지난 20여년간 우리시대 많은 사람들의 자화상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적어도 앞으로 공직자들에게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됐다. 공직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때문이다.
○권·부공유 곤란
최근 청와대 참모들이 『권력과 부를 함께 가질 수 없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지론을 다시 들먹이는 배경이다. 김 대통령은 7일 재산을 모은 과정이 납득되지 않으면 「개혁적 차원」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산공개를 숙정으로 연걸하겠다는 뜻으로 제2의 재산파동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각 윤리위원회와는 별도로 정부가 사정차원의 조사를 한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이미 조사에 착수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윤리위원회를 앞지르지 않기위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고위공직자의 10%가 숙정대상이라는 말도 1차서류 조사 결과 나온 추정이라고 한다.
각 윤리의원회는 재산등록을 성실히 했는지에 심사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징계를 의결할 수 있는 것은 재산등록을 거부하거나 허위 등록한 경우,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 등 세가지에 대해서만 징계를 의결할 수 있다. 그러니 재산 축적 과정이 어떠했건 윤리위가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와는 별도로 축제과정까지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처벌도 윤리위 차원을 떠나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공직자 윤리법만 따지고 있던 공직자들은 전혀 새로운 복병을 만난 셈이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재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어떤 방법으로 모았는지를 집중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속받은 재산이 많은 것과 투기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것과는 달리 취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많은 사람들이 축재뿐 아니라 재산을 보전하는 방법으로도 부동산 투기를 이용해 왔다. 진흙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따라서 웬만한 재산가의 경우 정밀조사하면 구린 구석이 없기 어렵다. 사실 공직자들의 재산목록을 보면 10억원이 안되는 경우에도 곳곳에 부동산을 갖고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추가등록도 대상
이 당국자도 『공직생활만으로 10억원 이상을 모은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재산등록의 평가기준으로 볼 때 재산가는 등록재산보다 더 많게 돼 있다. 그러니 공직생활만으로 10억원을 모았다면 국민정서상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이 당국자는 국회와 사법부는 자체 윤리위에서 조사기준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쪽에서 태풍이 불면 그역시 바람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먼저 조사될 대상은 1차 등록 때와 재산상 차이가 큰 공직자다. 민자당의 P의원은 지난번 62억원에서 1백69억원으로 등록했는데 무려 53건의 부동산을 추가 등록했다. 재산을 쉽게 공개하지 못한 사정이 대개는 떳떳하지 못할 것이란 추측이다.
가잠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공직을 이용한 치부다. 재산이 많은 공직자의 경우 주요 재산을 언제 어떻게 구입했는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 연고가 없는 곳에 부동산을 가진 경우 문제가 된다. 전국 곳곳에 공직자들의 땅이 있다. 특히 개발붐이 일었던 곳에는 빼곡히 모여 있다. 그러니 상속받았다는 해명,우연히 매입한 것이 개발됐다는 변명이 사실인지 가려봐야 한다. 또 증여세나 상속세 등의 탈세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관심의 표적이 된 양도성 예금증서(CD)를 신고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것도 의문이다. 가명계좌를 실명화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도 추적대상이다. 지난번에 문제가 됐던 부동산을 처분하고도 그 대금은 없어진 공직자도 있다. 재산공개를 앞두고 각종 단체에 기증이 많은 것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치부수단에 쐐기
사정당국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공직을 치부의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의식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또 공직을 맡으려면 자신의 재산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실명제에 이어 공직자 재산공개로 깨끗하고 투명한 공직자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공개 및 등록재산의 실사를 통해 숙정이 이루어지면 깨끗한 정부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윤리위가 해마다 공직자의 재산을 등록받아 실사를 계속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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