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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전용은 신중하게(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는 신경제계획의 역점사업의 하나로 미비한 사회간접자본을 대폭 확충하려 하고 있다. 정부재정으로 해야할 일은 이밖에도 무척 많다. 환경을 보전하고 쓰레기와 폐기물을 처분할 대책을 세워야하며 교육과 과학기술투자에도 많은 돈을 써야한다. 이런 모든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조달방법은 우선 증세를 생각할 수 있다. 그 다음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또 한은차입 증 통화증발을 감수하는 방법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방안 모두가 장단기적으로 거시경제에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벽에 부닥치고 만다. 증세에도 조세저항 때문에 한계가 있고 적자재정이나 통화증발은 물가안정과 상치된다.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민간부문의 막대한 재원을 동원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이도 과거 조사방침에 묶여 당장은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나온 재원조달 방법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을 재정투융자사업에 쓰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12일자로 재정투융자 특별회계법·기금관리법의 개정안과 공공자금관리 기본법을 입법예고하고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으로 있다. 이경식부총리는 2일 경사협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연금활용방침은 수정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정부안대로 하면 당초 가입자의 연금수급권이 그 사람의 갹출기록에 기초하는 수정적립방식으로 출발한 국민연금제도는 그 해의 갹출수입으로 그 해의 급여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 피해진다. 이렇게 되면 연금제도는 한 개인의 생애에 걸친 소득흐름의 재분배에서 세대간 재분배로 바뀌게 된다. 만약 선진국의 예에서처럼 국민연금재정이 부실화되면 그 부담은 다음 세대가 져야 한다. 정부안대로 해도 연금제도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금기금 사용에 대해 적정한 수익률도 보장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부족한 재원마련을 위해 연금의 부분적 재정전용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발표된 공공자금관리법을 완화하여 타협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연금의 재정자금 사용도 긍정적인 부담주체가 국민이라는 점에서 실질적 적자재정 운용이기 때문에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즉 각종 국책사업의 투자계획과 자금소요계획을 분명히 밝히고 가급적 특정사업에 한시적으로 연금이 사용되게끔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선 쓰기 쉽다고 연금을 아무데서나 끌어쓰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할 것인가. 연금 재원이 어떻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야하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확충,국민복지제도의 안정적 유지와 세대간의 부담이전이라는 세가지 잣대를 모두 한 도면위에서 바라보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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