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정면으로 반기/지역이기주의… 공인의식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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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의결권한 재조정” 목소리 높아/종로구청 왜 불복 않는지도 의혹
서울시 종로구의회가 서울 구기·평창·신영동 일대 풍치지구의 건축 규제를 위한 조례안을 부결시킨 것은 시민들의 정서에 정면으로 맞서는 하나의 「반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91년 지방의회 출범과 함께 각 자치구의 권한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구의회가 서울시 전체의 균형있는 도시개발과 자연경관 보존요구를 무시한채 지역주민의 편의와 이익에만 치중,서울시가 오랫동안 검토·연구를 거쳐 마련한 도시계획을 뒤집음으로써 지방의회의 큰 폐단으로 지적돼온 지역이기주의와 「의결권 남용」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시민의 입장으로 행정을 견제·감시해야 할 의회가 오히려 이같이 대다수 시민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실종된 공인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종로구는 시의 지시에 따라 북한산의 경관 보존을 위해 평창·구기도 일대의 무질서한 개발 방지를 목표로 지난해초부터 건축규제를 추진,올 4월 이 지역 10만여평에 건물을 지을 경우 높이 2층이하·건폐율 10%로 제한하는 조례안을 마련,구의회에 보냈었다.
이같은 건축규제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사유재산권 제한」이라는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북한산의 풍치보존,계획적인 개발을 바라는 여론에 밀려 규제안이 최종 확정됐었다.
그러나 구의회는 「자치구의 정책결정에 대한 승인권이 있다」는 이유로 종로구가 마련한 건축조례안을 부결,백지화하고 건축법에 따른 규제만 받도록 한 것이다.
종로구의회측은 『최근 그린벨트내의 건축규제가 완화되는 마당에 주거지로 개발된 이 지역만을 엄격한 건축규제로 묶는 것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부결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도시 경관 및 녹지보전이 서울시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데다 이 지역이 사유재산권 행사에 앞서는 시민 공유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높은 곳이어서 일반 그린벨트 개발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도심경관 보전을 위해 한강변 아파트 높이까지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마당에 이 지역의 건축규제 방안을 백지화한 것은 서울시의 정책우선순위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더구나 의욕적으로 이 지역의 건축규제를 추진해왔던 종로구도 종로구의회의 결정에 대해 재의요구 등 불복절차를 포기하고 그대로 따르기로 함으로써 당초방침을 번복하게된 경위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때문에 이번 종로구의회의 결정을 계기로 지방의회의 권한과 책임을 재조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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