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정일 즉흥화법 뒤엔 철저한 계산 깔려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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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난 사람=김민석 군사전문기자

 문정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전공)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잘 아는 사람이다. 국제정치학의 연구 대상으로 남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을 뿐만 아니라 2000년 제1차 정상회담 당시 특별 수행원으로 평양에 가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지근거리에서 노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해 왔고, 2004년부터 이듬해까지 동북아시대위원장(장관급)을 역임했다.

문 교수는 12일 “노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이나 전략적 사고를 갖춘 인물이란 점에서 상생의 지혜를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며 “과도한 기대를 하고 흥분하기보다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주안점을 둘 점은.
 “
남북 정상이 만나면 만날수록 평화·번영에 다가선다. 그래서 정상회담 정례화가 제일 큰 포인트다. 앙숙 관계인 독일과 프랑스가 어떻게 화해하고 유럽 통합까지 이뤄낼 수 있었는지 많은 사람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해답은 간단하다. 양국 정상이 많은 경우엔 한 달에 다섯 번도 만났고, 핫라인이 개설돼 문제가 터지면 직접 전화 통화로 해결했다. 남북 간에도 경제 협력, 평화 정착, 신뢰 구축이 다 중요하지만 정상회담 정례화가 되면 그걸로 큰 그림은 완성된다. 거기에 총리회담·경제회담·국방회담 등 사안별로 움직이는 계기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김 위원장의 회담 스타일은 어떤가.
 
“1차 회담 때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계산된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얼핏 보기엔 소탈하고 직설적이며 그래서 즉흥 발언이 많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2000년 6월 15일 김 위원장 주재로 송별 오찬이 백화원 초대소에서 있었다. 우리 대표단이 11시 반쯤 입장해 있는데 김 위원장이 11시45분에 들어와 주석단에 앉자마자 첫마디를 꺼냈다. ‘지금 국방위원회 소집하고 왔습니다. 휴전선 대남 비방 방송 일체 중단하기로 조치했습니다. 물론 일부 반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서도…’. 그렇게 말해 일제히 박수를 치게 유도하곤 물 한 컵 마시고 ‘그런데 이남에선 전기가 남아돈다면서요? 우리 나눠 씁시다. 아, 그저 달래는 거 아닙니다. 우리도 여유 있으면 갚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김 대통령이 화답해 ‘해 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철도도 연결합시다. 그러면 신의주를 거쳐 철의 실크로드가 열립니다’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김 위원장 왈, ‘아, 그거 인민군 1개 사단 풀면 할 수 있어요’라고 맞받았다. 이런 식으로 격식 안 차리고 말하지만 미리 계산된 발언이다.”
 
-의전이나 격식에는 까다롭지 않은가.
 
“의전에는 너그러운 편이다. 예를 들면 송별 오찬에서 김 위원장의 테이블에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 측 경제대표단 등이 우르르 다가가 와인을 함께 마시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는 사전 연출된 게 아니라 손길승 당시 SK 부회장의 즉석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입장할 땐 엄격하지만 그 안에선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내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임동옥 통일전선 부부장에게 ‘담배 피워도 되느냐’고 묻자 ‘아, 그건 피우라고 갖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 좌석에서 안 피우니 모두 안 피울 줄 알았는데 북측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의제에 대한 사전 합의가 없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실무진이 의제를 사전에 논의하고 정상끼리는 타결짓는 것이 일반적인 정상회담 모델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은 정상들끼리 공식 회담과 비공식 만남에서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곧 법이 되는 북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상당한 스릴과 서스펜스가 따르는 회담이 바로 남북 정상회담이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 체제 구축, 경협 활성화, 동북아 안보협력 체제, 인도적 지원 및 국군 포로·납북자 등 여러 이슈가 있지만 의제 선정의 공식화가 어렵다. 1차 때도 그랬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정상들의 재량에 맡겨진다고 보면 된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인물 비교를 한다면.
 
“김 위원장은 즉흥 토론을 좋아하는데 이런 점은 서로 비슷하다. 노 대통령도 의전이나 시나리오대로 하는 것을 불편해 하고 연설문도 그대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서로 주관이 뚜렷하므로 회담 중 반드시 긴장 국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고도의 전략가다. 자기들이 이루려 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얘기다. 토론이 격해져 싸움이 붙는다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든지 하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사전에 의제가 조율되지 않은 상태니 그런 걱정이 있을 수 있다. 흔히 두 사람 다 ‘말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필요한 말은 세심하게 듣고 받아들일 줄 아는 인물이다.”
 
-두 정상의 차이점이 있다면.
 
“행태적으로는 유사성이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큰 차이점이 있다. 노 대통령에겐 국내 정치적 제약이 많다. 임기 말의 단임제 대통령으로선 회담 결과가 좋건 나쁘건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역사적 기록과 평가를 중요시한다. 이번 방북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된다.”
 
-김 위원장이 답방을 약속하고도 2차 회담을 다시 평양에서 여는 것을 어떻게 보나.
 
“1차 회담 때 실은 이런 경위가 있었다. 답방 문제를 6·15 공동선언문에 집어 넣자고 하자 김 위원장은 끝까지 거부하며 비워 두자고 했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말하지 않았느냐, 연장자가 먼저 찾아 왔는데 답방을 안 한다니 그게 무슨 예의냐’고 말해 막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마지못해 합의에 응해준 것이지, 본심은 썩 내키지 않아 했다는 얘기다. 만의 하나, 북측이 신격화하는 김 위원장의 경호에 사소한 문제라도 일어나면 그걸로 남북 관계는 끝이다. 저간의 사정을 노 대통령이 다 알고 있으니 장소에 고집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김 위원장이 뭘 얻기 위해 회담에 응했을까 궁금하다.

 “올 5월 평양을 방문했는데 그때 북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점을 느꼈다. 그들 논리에서 보자면 지난해 미사일·핵 실험으로 ‘강성(强盛) 대국’ 목표 가운데 ‘강’을 이뤄냈으니 이제는 ‘성’을 만들 차례라는 것이다. 즉 경제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올 들어 군 부대 시찰보다는 공장 시찰이 많아졌다. 그런 면에서 남측으로부터의 경제 협력이 절실하지 않았을까.”
 
-노 대통령이 합의해 주면 곤란한 점을 꼽는다면.
 
“남북한 재래식 군축을 거론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안 된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재래식 무기를 감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군사적 신뢰 구축은 가능하다. 상호 군사훈련 통보와 참관, 국방부 장관 간 핫라인, 인사·정보 교류, 비무장 지대에 공동위기관리 센터 설치 등과 함께 이를 총괄하는 남북 공동군사위원회를 재가동할 수 있다.”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거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재설정하자고 북이 주장하는데.
 
“북은 북대로 논리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거론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도 양보 못 할 부분이 있다. 가령 NLL 문제는 우리가 어렵게 해서 딴 것인데 어떻게 간단히 내주겠나. 하지만 북측이 어려운 문제를 먼저 앞세워 판 자체를 깨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어느 정도 교감이 있다고 본다. 그런 문제들은 정상회담에서 다룰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장성급 또는 국방장관 회담에서 기술적 문제로 다루면 된다.”
 
-남북 정상회담과 6자회담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과거엔 6자회담이 남북 관계보다 반 걸음 앞서 나갔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라며 우려를 표명한 미국의 잭 프리처드 전 대북 교섭 특사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 6자회담과 남북 관계는 상호보완적인 것이지 배타적이지 않다. 어느 한쪽이 약간 앞으로 나갈 수는 있지만 멀리는 못 나간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 2002년 4월 임동원 특보가 평양에 가서 김 위원장에게 ‘미국 특사를 받고 북·미 대화를 하라’고 얘기했는데 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거론하며 ‘국제 정세가 유동적이어서 쉽사리 못한다’고 했다. 북은 우리보다 훨씬 국제정세에 민감하다. 이번에 회담에 나온 것은 종합적으로 국제 정세를 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지, 우리에게서 떡고물이나 더 많이 챙기려고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는 어떤 구상이 가능할까.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말한다. 9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남북 정상이 함께 나가 4자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어렵다. 9월 말 유엔 총회에 같이 나가 한반도 평화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고 6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방법인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러시아의 아무르강, 몽고의 헬렌강, 북한의 두만강 유역을 연계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6자회담 참가국에다 몽골을 추가한 7개국 경제각료회의를 한반도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이 각료회의에 남북 정상이 공동의장으로 참가할 수 있다.”

문정인 교수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특별수행팀으로 참가해 각종 회담 전략을 자문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의 동북아시대위원장을 거쳐 국제안보대사, 국방발전위원회 위원 직을 수행하고 있다. 아시아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저명 인사·전문가 회의’ 공동의장과 미국 국제정치학회(ISA) 부회장을 맡아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 중이다. 우리 공군의 ‘항공력 심포지엄’ 등을 수차례 주관해 핫이슈가 됐던 차기 전투기(F-X) 사업과 공중조기경보기(E-X) 사업 등을 공론화했다. ▶제주 출신(1951년생) ▶연세대 철학과 ▶미국 메릴랜드대(정치학 박사) ▶켄터키대학 조교수 ▶제주평화포럼 조직위원장 ▶‘글로벌 아시아’(영문 계간지) 편집장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정리=예영준 정치부문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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