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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안보용” 베일 벗겼다/감사원이 밝힌 「평화의 댐」 실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금강산댐 저수량 50∼60억톤에 불과/전 전 대통령­장세동씨가 “합작” 결론
감사원의 「평화의 댐」 특감은 한 정권이 잘못 펼친 것으로 드러난 중요국사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하려했다는 의미가 있다.
애초부터 특감의 핵심은 누가,무슨 이유로 수공위협을 과장했느냐를 밝히는 데 있었다. 「2백억t 수공」설은 너무 과장된 것이어서 이를 수치로 증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의 자연·물리적 실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않는 속셈이었다. 5공정권이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온다」고 국민에게 겁을 준 배경을 감사원이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었다. 시대적·정치적 동기를 구체적으로 입증한다는게 쉽지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여러가지 기록을 검토하고 증언을 청취한 결과,이 대목을 규명했다고 자부하는 듯하다.
이번 특감은 통치행위에 가까운 대통령 업무수행에 대해 잘잘못을 가려낸 최초의 사례가 됐다. 그러나 전직대통령의 재임중 업무를 감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고있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답변을 얻어냈고,그의 재임중 행위에 대한 재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전씨는 26일 발표한 대국민 해명서에서 여러가지 변명을 내놓았지만 감사원은 나름의 「증거와 증언」으로 이를 무력화한 결론을 내렸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할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다.
감사결과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은 안기부 실무진의 「70억t,88년 전 완공불가」 판단을 덮어두고 2백억t 수공이라는 막연한 분석을 의도적으로 채택해 전 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북한 금강산댐 문제가 터진 86년 가을,5공정권에는 시련의 파도가 거세게 닥치고 있었다. 군부독재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점점 커졌다.
결과적으로 보듯,직선제 개헌은 국민의 움직일 수 없는 요구였다. 5공정권은 북한 금강산댐을 이용해 이 거대한 물결을 막아보려고 했던것 같다는게 감사원의 평가다.
5공정권은 국민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 87년 2월 서둘러 평화의 댐을 착공했다. 그리곤 한달 보름뒤인 4월13일 호헌을 외치고 나섰던 것이다.
평화의 댐 특감은 6월28일 시작됐다. 감사원은 7월14일까지 안기부·국방부·건설부·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해 실지감사를 벌였다.
특히 안기부에 감사관이 들어간 것은 부창설이래 처음이어서 『성역을 깼다』는 의미도 새겼다. 감사원은 이기백 전 국방·이규효 전 건설장관,이학봉 전 안기부2차장 등 당시 정부관계자 19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장 전 부장과는 서울구치소에서 반나절동안이나 씨름했다.
감사원은 5공정부가 2백억t이라고 떠벌린 북한 금강산댐의 정확한 저수량과 수공위협도를 정확히 산출해내기 위해 자체 전문가들을 동원해 분석작업을 벌였고,이를 외부기관인 대댐학회에 보내 객관적 검증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수치가 최대치로 50억∼60억t인 것이다.
평화의 댐 특감은 앞으로 혹시 국가적 사안을 정권안보에 이용하려 할지도 모를 정권담당자들에게 엄중한 경종이 될 것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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