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도 가정도 “내몰라라”/떠도는 정신질환자/충동범행 늘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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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입원치료 필요” 10만여명/주변서 「병」 숨기고 시설도 크게 모자라/지난해 범죄 1천3백건 발생
떠도는 정신질환자가 많은데 비해 이들에 대한 국가나 가정의 관리가 소홀,「움직이는 흉기」로 돌변하는 일이 잦아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91년 10월 대구 나이트클럽 방화사건과 여의도광장의 살인질주사건,지난해 8월 여의도광장 인파속 개인택시 고의질주사건 등 대형사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최근들어 서울 신길동 중대생 살해사건,용두동 주민9명 상해사건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3일 발생한 서울 장위동 일가족 5명 살해 암장사건의 범인도 고교재학중 누나의 교통사고사망에 충격을 받아 심한 우울증을 앓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보사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는 전인구의 2%인 94만명,이중 입원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자는 10만9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시설은 사실상 격리수용시설이나 다름없는 요양원을 포함해 5백9군데로 총병상수는 수요의 31%인 3만4천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환자가족들도 치료보다는 오히려 정신질환 사실을 숨기고 한두차례 겉치레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환자관리가 소홀한 상태다.
이에따라 상당수의 정신질환자들이 곧잘 「움직이는 흉기」로 돌변해 지난 한햇동안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전체범죄의 1.7%인 1천2백96건으로 이중 살인·강도·강간·방화 등 강력범죄도 53건에 달했다.
이처럼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것은 생활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언제든지 정신착란을 일으켜 사고를 낼 수 있는 환자들이 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국가와 가정의 관리가 소홀한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인권침해 논란끝에 사고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의 강제격리를 골자로한 정신보건법안을 지난해말 국회에 제출,금년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나 정신질환의 특성상 범죄예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세대의대 고경봉교수(정신과)는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대로 치료시설과 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을 확충하고 가족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치료를 받도록 힘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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