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못믿겠다며 기업에서 자금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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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업인들이 정치인은 못 믿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에게 대선자금 전달을 맡겼다."

삼성.LG.현대자동차에서 3백62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법률고문 출신 서정우(徐廷友)변호사는 13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 그러나 李전후보의 지시 사실은 부인했다.

徐변호사는 이날 "李전후보가 돈 받은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는 검찰의 추궁에 "그분은 그런 일에 관여할 성격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삼성.LG.현대자동차로부터 돈을 받아 이재현 당시 한나라당 재정국장에게 건네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일에 가능하면 적은 사람들이 관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李국장에게도 '어디서 온 것인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돈의 출처는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왜 자금 전달역을 맡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기업들이 나를 통해 자금을 전달하겠다고 해서 사실 나도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기업 관계자들이 "李후보를 지원하고 싶다"면서 "정치인들은 못 믿겠다. 당신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신뢰가 생겼으니) 당신이 전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徐변호사는 "기업인들은 또 당 핵심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돈을 지원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덧붙였다.

삼성으로부터 받은 채권 1백12억원어치와 관련, 그는 "삼성 측이 '채권이 준비돼 있는데 현금으로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얼떨결에 '채권도 좋습니다'라고 말했으며 결국 채권으로 받은 뒤 직접 현금으로 바꿔 당에 서너차례에 걸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현금으로 바꾸고 보니 1백억원에서 1억원 이상 모자랐다"면서 "채권을 현금으로 바꾼 구체적 경위는 밝힐 수 없다"고 버텼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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