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투기억제대책 필수/실명제 부작용 줄이려면…(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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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종합토지세 건물까지도 합산바람직/「과거」묻지말고 예금비밀 철저보장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이다. 실시 가능성과 실시 시기를 놓고 말도 많았다. 가위 혁명적인 결단이다.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인지 지난 82년 금융실명제법까지 만들면서 추진했던 것이 1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 빛을 보게 되었다.
87년 대통령선거때 1노3김의 해묵은 선거공약을 다시 들춰봤다. 네사람 모두 경제공약의 제일 우두머리에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한 금융실명제 실시를 내세웠다. 6공에서도 3당합당후에 실명제실시를 무기 연기시켰었다. 결국 그중 한사람이었던 김영삼대통령이 역사의 변혁을 주도하고 있다.
슬롯머신사건·동화은행사건 등 대형 비리사건이 터질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게 가명계좌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 발생의 핵심적 연결고리가 되고있는 가명거래를 없애는 결단이야 말로 성숙한 개혁의 신호탄이다.
타이밍도 좋다. 예측 가능한 경제로 불확실성을 제거해서 경제활력의 기본체력을 다져야 할 때다. 실명의 금융자산소득에 대해 종합과세하는 것이 실명제의 궁극적인 목적이지만 이것은 경제적 분배정의에 관한 것이고,그에 앞서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화함으로써 사회정의를 달성하려는데 이번 조치의 의의가 있다. 지하의 검은 돈을 지상으로 올려 놓는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92년말 현재 은행은 1백만개의 가명계좌에 약 1조3천억원,증권은 2만6천계좌에 1조2천억원이 얼굴없는 돈이다. 가명계좌로만 본다면 총통화 1백10조원에 비해 큰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차명계좌와 가명으로 거래할 수 있는 CD(양도성예금증서)·장기채권을 합하면 천문학적 금액이 된다. 금융계는 대체로 전체계좌의 10%내외를 차명으로 보고있는데 제1,2금융권을 통틀어 약 2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가명·차명의 규모가 약 30조원에 달한다 총통화의 약 30%가 금융기관의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활개치고 있는,어처구니없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조치로 돈의 흐름이 정상화될 것이다. 부동산·증권시장을 교란했던 단기적인 투기성 자금이 생산현장으로 건전하게 흐를 수 있게 됐다. 또한 상속세와 증여세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게 됐다. 부동산을 팔아 가명예금으로 상속과 증여를 하면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 세대를 넘어가면서도 부익부 빈익빈은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살아왔다. 주식의 위장분산을 통해 허위적인 기업공개를 하고 탈세를 통해 증권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던 부조리가 없어질 것이다. 또한 앞으로 외환 자본자유화가 진점됨으로써 외국자본이 국내에 많이 유입되게 되는데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실명제 실시의 부작용이 여러갈래로 제기됐지만 결국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었다. 이번조치로 검은 정치자금 거래가 상당히 타격받게 되고 건전하고 투명한 정치가 기대된다.
단기적으로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이라고 한다. 기업이 부동산투기나 탈세와 같은 불법적 방법으로 돈 벌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업이 위축된다고 한다면 세금탈세하려고 하니 세무서 없애라는 것과 같다. 설령 과거에는 그랬다고 해도 앞으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또한 금융저축이 감소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물론 단기적으로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에서 빠져나온 돈이 외국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일시적 저축감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어디로 가겠는가. 부동산으로 갔다고 하자. 부동산을 판 사람은 그 돈을 다시 부동산을 매입하든지,금융기관에 예치하든지,자기 금고에 넣어 두든지 할 것이다. 결국 몇사람 거쳐 어떤 형태로든 제도금융권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게된다.
따라서 앞으로 강력한 투기억제 대책이 필요하다. 종합토지세제를 건물까지 포함하는 종합부동산세제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
외국에 돈이 많이 빠져 나갈 것이라고 걱정한다. 물론 조금은 빠져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나갈 돈은 많이 나갔다. 오히려 투기적인 돈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좋다. 외국에 가봤자 한국보다 이자 높고 돈 벌기 쉬운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개혁에는 항상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개혁에 의한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를 압도할 때 개혁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단기적 충격을 최소화 할수 있는 보완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명화할때 자금출처를 캐지 말아야 한다. 과세 차원에서도 너무 엄격하게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과거를 묻지 말자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고 동시에 공범자다. 예금자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해주어야 한다. 형사상의 범죄로 확신하기 전에는 반드시 예금자의 비밀을 보장해 주는 법과 관행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증권시장의 안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위장분산돼 있는 대주주들의 대형 매물을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하는 것이다.
한은 특별융자를 해서라도 기관투자가들이 매물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중소기업의 일시적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긴급자금의 방출과 동시에 은행대출 상환을 일시 연기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끝으로 영수증 주고 받기의 범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개혁을 거부하고 정권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이고 그럴 경우 집권당은 정권을 꼭 내놓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 말은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에 난 「구조개혁 성공의 정치학」이라는 글에 나온 말이다.<김대식 중앙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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