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함께보는 판결] 음표 한 개에 1000만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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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12면

모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올챙이 송’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데 이어 ‘손발체조’ 노래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단순한 멜로디지만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며 풀어주는 이 노래는 본래 유아들을 대상으로 창작된 동요였는데, 깜찍한 동영상과 함께 전파돼 성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 노래가 법의 심판대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 손발체조 송의 작사·작곡가인 A씨는 계약에 따라 이 노래를 유아용 비디오테이프로 제작해 판매해온 B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은 단 한 개의 음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원곡에 ‘미’로 표시되어 있는 음표 한 개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시중에 유포된 곡에는 ‘라’로 바뀌어 녹음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법원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임의로 변경한 것은 저작권자의 권리(동일성유지권)를 침해한 것”이라며 1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노래는 가사가 있는 부분이 12마디밖에 되지 않는 짧은 곡일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 음 하나하나를 따라 노래하는 동요의 특성상 단지 음 하나만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곡 전체의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원은 ‘사소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저작물은 일반 재산권과 달리 창작자의 인격이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창작자의 허락 없이 임의로 그 내용이 변경될 경우 창작자의 인격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창작 의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저작권법 13조는 학교교육 목적과 건축물 증·개축 등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만 변경을 허용하되 이 경우에도 본질적인 부분은 변경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건물도 저작물의 일종이고 그 저작권은 건물주가 아닌 설계사에게 속해 이론상 건물주가 설계사의 허락 없이 증·개축하는 것은 설계사의 저작권(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 이런 부당함을 막기 위해 저작권법은 건물의 증·개축을 동일성유지권의 예외규정으로 두고 있을 정도다.

10여 년 전 아이돌 스타였던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라이브콘서트’ 실황 녹화물을 비디오테이프로 제작해 판매한 음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이유는 실황 녹화물을 전혀 편집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제작·판매하기로 한 당초 계약과 달리 음반사가 임의로 콘서트 제목을 자막으로 처리하고 노래마다 제목을 자막으로 넣었을 뿐만 아니라 그중 한 곡은 전혀 엉뚱한 제목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계약서에 명시한 '편집하거나 수정하지 않는다'는 문구의 의미에 대해 곡의 순서를 바꾸거나 일부를 삭제해 공연시간을 단축하는 행위로 해석했다.

노래 제목을 자막으로 처리한 것은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봐야지 '본질적인 변경'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서태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십여 년 만에 법원의 태도는 이렇게 변했다. 음표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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