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잔재 깨끗이 씻는다”/헐리게 된 구 일총독관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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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 전 대통령까지 집무실·관저로 써/풍수학계 “사람 목에 해당… 기 눌러와”
구총독부청사에 이어 구총독관저까지 헐리게 됨으로써 서울의 핵심부에 일제가 심어놓은 「민족정기말살」 구조물들이 거의 사라지게 됐다.
일제는 37년 10월∼39년 7월 현 청와대내에 2층짜리 연와조 건물인 이 총독관저를 지었다. 이곳에는 45년 광복때까지 미나미지로(남차랑)·고이소 구니아키(소기국소)·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 등 3명의 일본총독이 살았다.
해방직후 아베는 건물내부를 불태웠으나 미 군정청의 하지중장이 이를 고쳐 관저로 사용했다.
48년 8월 정부수립 이후부터 90년∼91년 새 본관과 새 관저가 지어지기까지 이곳은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대통령이 대를 이어가며 집무실겸 관저로 썼다.
노 전 대통령은 91년 7월 지금의 새 본관(대통령 집무실)이 완공된후 2층 한구석을 의무실로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비워두었다. 김영삼대통령 취임이후 1층 구석에 30석규모의 식당이 추가로 들어섰다.
이 건물은 지하벙커(97평)·토굴(15평)·경호원숙소(1백55평)·창고(1백9평) 등을 포함해 총 1천5백여평규모. 풍수지리학계에는 북한산과 경복궁터가 서울의 「안면부」에 해당한다는 분석이 있다. 학자중에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기를 누르려 이마인 북한산 인수봉에는 쇠못을 박았고,입 부분인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엔 총독부 청사를 지었으며 「목」지점에 총독관저를 지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김영삼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새 정부 출범이후 이 건물의 「운명」을 검토해왔다. 일부에서 역대 대통령 기념관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청와대 경내에 있어 일반인 접근이 어렵고 청와대 바깥으로 옮기려해도 너무 낡아 기술적으로 복원이 어렵다고 한다. 이 건물은 너무 낡아 빗물이 새고 시멘트 조각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적 사정도 있지만 김 대통령은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 민족정기를 되살린다는 차원에서 총독부청사에 이어 이 건물의 철거도 결정했다고 한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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