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몽고 다녀온 여야의원 한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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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물거리다간 중국에 잡힌다”/노동력 무기… 경공업 비약발전/「공해월경」 외교문제로 다뤄야/대러 경협은 장기적 투자로 생각해야
『중국이 이미 우리를 바싹 쫓아왔습니다. 이대로 어물거리다간 우리가 선점해야할 기술개발까지 놓쳐버리고 영영 뒤처질 지도 모릅니다.』
최근 중국·러시아·몽고 등 3개국을 동반여행하고 돌아온 조영장·김영진(민자),이해찬·장영달(민주)씨 등 여야의원들은 5일 한목소리로 『어물거릴 때가 아니다』는 경각심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한­러시아(김영진·이해찬),한­몽고(조영장·장영달) 친선협회소속으로 지난달 하순부터 8월하순까지 같이 여행했다. 민자당의 김 의원은 강원지사·내무차관출신,조 의원은 기업인출신으로 전형적인 여권인사로 보수파들이다. 반면 민주당의 이·장 의원은 과거 재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1급투쟁가 출신들로 진보파다.
이들 4명은 이처럼 출신과 성향이 상반돼 여행출발부터 흥미를 끌었다. 상당한 시각차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밤샘땐 임금2배
그러나 최근 귀국한 이들 4명은 하나같이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는 심각한 우려를 토해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번 정치특위의 외국정보기관 시찰과는 달리 여야없이 똑같이 느끼고 공통의 교훈을 얻고 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출발에 앞서 『각국 관료나 만나는 형식적방문을 지양하고 중국·러시아·몽고의 실제사회·경제상을 꿰뚫어보고 오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에따라 일행은 되도록 관광명소보다는 시장·국영백화점·개인상점·외국인 전용상점·공장을 찾아 각나라 지방의 「삶의 수준」과 경제발전상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이들은 북경공항에 도착했으때 북경으로 진입하는 동북쪽 외곽에서 중국인들이 철야로 도로건설작업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철야작업은 임금이 두배』라는 모대학 교수인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여야의원들은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만만적)가 서서히 깨져가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이해찬의원은 『듣던 것과 좀 다른데…』라는 말을 되뇌었다.
북경남서쪽 외곽의 한 시장을 방문한 의원들은 각종 농산물의 헐값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국내에서 8천∼1만원하는 수박(7월중순가)이 3백원,쌀 한가마는 1만원을 호가할 뿐이었다.
지난 91년 중국을 한차례 찾았던 김영진의원은 『2년새 시장상인들의 눈빛마저 달라졌더라』고 토로했다.
○쌀한가마 1만원
중국 초행길인 이해찬의원은 대우와 독일이 공동경영하는 북경의 한 백화점을 둘러봤다.
이 의원은 『경공업제품은 이젠 중국과 도저히 경쟁할수 없게됐다는 현실을 대하다 보니 등에서 식은 땀이 날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안내를 맡은 현지 대학교수는 『인구 12억명이라는 숫자가 한때는 식량부족을 야기하는 등 경제발전의 암적요소로 작용했으나 지금은 식량자급과 함께 엄청난 노동력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일행은 중국이 황해로 걸러내지 않고 쏟아내는 폐수와 연안공장의 분진 등이 우리나라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향후 황사와 함께 한­중간 외교적 현안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러시아 방문에서 일행은 모스크바에서 아마로초모프 러시아의회외교·경제협력분과 위원장 및 의원 10여명과 대화했다. 아마로초모프 위원장은 『소련은 망했지만 러시아가 망한 것은 아니다』며 『어려울때 우리에게 차관을 제공해준 한국에 커다란 고마움과 함께 재때 갚지못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전에 대해서는 『있을수 없던 전쟁』이라며 북의 책임을 시사했다고 한다. 여야의원들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경제지원을 포함,장기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교감을 이루었다. 이·장 의원은 『돈을 빌려주고 못받아 안달하는 모습은 좋지않다. 대러시아외교에 대한 장기적 투자라는 시각으로 빚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밖으로 눈돌려야
얼마전 러시아의 대한차관 원리금상환 동결에 민주당이 『즉각 상환협상을 벌이고 잔여차관을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였던 사실을 상기하면 엄청난 시각변화다. 이·장 의원은 자신들의 「인식」을 앞으로 당에 신중히 건의하겠다고 한다. 여야의원들은 귀국길에 오르며 『정치권도 이젠 안방싸움보다 「밖」과의 싸움에 눈을 돌려야할 때』라고 다짐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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