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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씀이 헤픈 한국관광객(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나라 해외관광객의 씀씀이가 일본인에 이어 세계 2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관광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91년의 경우 일본인 관광객은 그 90% 수준인 2천38달러였다.
1인당 국민소득에선 4분의 1에도 못미치면서 씀씀이만 어깨를 겨눌만하다는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일본은 엄청난 무역흑자와 엔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70년대부터 일본은 국민들에게 해외여행을 장려하고,그를 통해 외화소비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써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은 어떤가. 80년대 후반 장마에 햇볕나듯 잠깐 무역흑자를 기록하더니 일순에 다시 적자로 돌아서 아직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국민이 달러가 남아서 걱정인 나라의 국민과 씀씀이가 엇비슷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는 80년대 후반의 부동산투기와 재테크 붐,그에 따라 빚어진 과소비 풍조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불로소득을 챙긴 계층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한풀이 하듯 마구 써댄 결과인 것이다. 이로인해 관광입국을 국가시책으로 내걸어 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관광수지가 적자가 된지도 오래 되었다.
소득이 많아질수록 알뜰히 쓰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어느모로 보나 선진국인 미국·프랑스·영국·스웨덴의 해외관광지출 규모가 하나같이 1천달러를 넘지 않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우는 관광대국이면서도 자신들은 해외여행때 각 6백12달러와 2백33달러를 쓰는게 고작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억제하려면 우선 불로소득의 구멍이 좁아져야 한다. 그러나 제도나 법만으로 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들의 습관과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선물하는 관행도 씀씀이가 크게하는 큰 원인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하는건 나무랄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선물주는 범위가 너무 넓고,선물에 들이는 비용도 너무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가족이외에는 선물안하기운동 같은것이 각 직장에서 시작되었으면 한다.
여행지에서의 헤픈 씀씀이도 자제되어야 한다. 일본인들의 향락관광을 보면서 우리들은 얼마나 손가락질 해왔던가. 그것을 이제는 우리들이 하고 있다. 더구나 나라의 형편을 보면 결코 그럴 처지도 아닌데 마치 일본인들을 흉내라도 내듯 하고 있으니 얼마나 꼴불견이 겠는가.
더구나 최근에는 소득없는 젊은이 사이에서마저 해외여행이 유행이 되고 있다. 해외여행은 좋다. 우리는 세계를 더 많이 알고 국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세계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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