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비교한 우리의 현실(너무 뒤진 「인프라」: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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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화」로 국토효율 극대화/늘어난 물동량 처리 항만 시급
천혜의 지리적 이점과 사회간접자본(인프라스트럭처)을 기막히게 복합화함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 네덜란드의 성공은 지정학적 위치가 흡사한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네덜란드의 견실한 경제는 유럽의 물류센터 역할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역할을 수행할 인프라가 없지만 우리는 진정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헤이그시내 웬만한 개천너비의 운하옆 3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이 사물실인 네덜란드 물류협회(HIDC)의 폰스 폰테인 이사가 똑똑 부러지듯 명쾌하게 주장했듯 네덜란드는 물류효율 극대화의 한 표본이다. 남북의 길이 2백90㎞,동서 폭 1백15㎞로 국토면적은 세계 1백21번째. 1천5백만명의 인구는 세계 51번째. 한마디로 소국이다. 그렇지만 재화 및 서비스의 수출은 세계 6위로 국내총생산(GDP) 2천8백달러(91년)의 56.6%를 수출했다. 해외투자가 8백73억달러로 세계 5위다.
네덜란드는 18개 국가,3억6천만명의 인구,5조6천억달러의 국민총생산(GNP)을 포용하고 있는 세계최대시장 유럽의 관문이다. 네덜란드 수출중 82%가 유럽행이고 수출의 절반이상이 통과상품이다. 유럽이 수입하는 일본제품의 40%가 네덜란드를 거친다.
그리고 그 관문의 관문이 로테르담항이다. 연간 화물처리량 2억9천만t의 이 항구 하나가 한국 전체 항만물동량에 육박한다. 미국 뉴욕의 2배며 독일 함부르크와 브레멘,영국 런던,프랑스의 르 하브르,벨기에의 엔트워프 등 이름난 항구들을 합친것만 하다. 물동량 세계최대의 항구다. 세계최대가 된것은 면적만 넓어서가 아니다. 사회간접자본은 우연히,저절로 개선되는게 아니라 국가가 과감한 선행투자를 해야 이루어진다는 네덜란드 정부,특히 로테르담시 결단의 열매다. 최대가 된것는 62년 이후부터다. 이제 이곳 사람들은 이 항구를 「로테르담항」이라 부르지 않는다. 「메인 포트(주항) 로테르담」이라 호칭한다. 「유럽의 주항」을 만들어낸 자부심이다.
이들은 이곳에 매년 3만2천건에 이르는 외항선 입항을 비롯해 총 25만건에 달하는 대소선박의 입항을 처리하는 인프라와 아울러 보관 및 수송 등 후방지원 시설을 체계적으로 집중시켜 놓고 있다. 이러한 로테르담도 서유럽 다른 항구로부터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함부르크가 2개의 대단위 집배센터를 짓고 있고 브레멘은 컨테이너 터미널을 80㏊ 늘리고 새로운 자동차 터미널을 건설중이다.
엔트워프는 6천4백㏊의 항구능력을 확장하는 한편 제2 컨테이너 터미널을 계획중이며 르 하브르도 연간 컨테이너 30만개를 처리할 수 있는 터미널 건설을 90년 착수했다.
로테르담시는 이들 외국항구의 도전을 제치고 계속 세계최대항구를 유지하기 위해 「2010년 항구 계획」을 수립,21세기에 대비하고 있다. 취급되는 화물의 60% 정도가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환적된다해서 로테르담을 일반적으로 중계항이라고 하지만 이 항구는 수송·집배·무역과 아울러 산업항이기도 하다. 나머지 40%의 회물중 절반이 항구내 공업지구에서 가공·재수출되고 있다. 한 예로 정유·유화단지가 1천60㏊에 이른다. 에소·BP·셸·텍사코 등 세계메이저들의 정유공장들이 항구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집하·보관·송달을 전문으로 하는 수백개 업체들이 창고·유통시설을 제공함으로써 다목적항의 기능을 발휘케 하고 있다. 선박 접안지구와 내륙도로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 창고들에서는 조립·재포장·라벨부착과 기타 가치부가서비스가 제공되고 재고보고서·통관·원산지증명 발급 등의 서비스도 해준다.
◎부산·인천 「월드포트」 잠재력 크다
전세계에는 자유항·자유무역지대 등이 4백개소가 있다. 로테르담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자를 외빈용 소형시찰선에 태워 로테르담시로부터 항구입구까지 40㎞의 내항 전체를 보여준 시항만국 유프 부스켄스 기획담당이사는 로테르담을 『자유항보다 더 자유로운 항구』라고 규정했다.
라인강 등 유럽의 큰 강들과 5천㎞에 가까운 수로들이 네덜란드에서 합류하는 것은 물류메카를 위한 천혜의 조건이다.
또 육로수송이 물류의 80%를 차지하는 유럽에서 네덜란드인 소유 도로운송회사가 7천5백개,이들이 보유한 대형트럭과 트레일러가 8만4천대로 전유럽 트럭운송 설비의 40%에 이른다는 것은 괄목할만하다.
로테르담항이 네덜란드 경제에서 점하는 비중은 막중하다.
항구 관련산업이 GNP의 10%를 기여한다. 적어도 29만명이 로테르담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먹고 살며 로테르담외의 지역에서도 12만명 정도가 후방지원·투자 등으로 이곳에 기대어 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항만물동량은 3억5천만t 수준이다. 10년전에 비해 두배반 정도로 늘었다.
하역능력도 그간 비슷한 배수로 증가했다지만 처리능력은 2억t으로 수요에는 크게 미달한다.
부산·인천항의 처리율이 각각 1백80%가 넘는다. 체선으로 외항선박의 내항기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사회간접자본만 제대로 갖춘다면 동북아의 중심지대로서,월드 포트로서 도약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네덜란드에서 보고 있다.<한남규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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