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 새 총재 하야는 누구인가/온화한 이미지… 명문가출신 10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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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노 요헤이(하야양평·56) 자민당 신임총재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 총리를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순수한 호헌파도 대중적 인기가 높다. 지난 총선에서는 인기없는 미야자와 대신 참신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민당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10선의원인 그가 기울어져가는 자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하기까지엔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이 있다.
지난 76년 록히드사건때 「부패와의 결별」 「신자유주의의 확립」 「경직된 정치로부터의 탈피」 등을 외치며 동료 5명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신자유클럽을 결성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신자유클럽의 초대 대표였던 그는 76년 12월 실시된 선거에서 일거에 18명으로 의석을 늘려 신자유클럽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80년 선거에서 신자유클럽은 12석으로 줄었으며 그뒤 한자리 숫자의 의석을 유지하는데 그쳐 보수의 두터운 벽에 부닥치는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는 신자유클럽 동료와 함께 86년 자민당에 복귀한뒤 과기청장관으로 입각했으나 과거의 행적때문에 다케시타(죽하)파의 견제를 받아 주요 각료로 발탁되지 못하는 등 찬밥신세였다. 그뒤 다케시타파 분열로 겨우 관방장관이 될수 있었다.
고노총재는 남성적인 마스크와 온후한 미소로 인해 주위로부터 친근감을 사고 있으며 단호한 행동력은 정평이 나있다. 그는 7당 연정을 『금권과 인사로 상징되는 신담합형 권력정치로 극히 국가주의적인 색채가 농후한 정치운영을 꾀하고 있다』며 일본의 국제지위 향상을 위해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하타 쓰토무(우전자)·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의 신생당을 비판했다. 그는 신생당 결성에 대해 『개혁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체질』이라며 금권정치 속에서 신생당 집행부를 비난했다. 사진촬영이 취미로 자타가 공인하는 애처가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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