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연구·평가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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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0년대의 피해자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12·12사태를 가리켜「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정치적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이 같은 정치적 평가에 덧붙여 이 사건을 훗날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말을 했다.
또 지난 23일에는 국사편찬 위원회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80년대 들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한번 당부했다.
10·26, 12·12, 5·17 등 서술편의를 위해 숫자나열로 그친 당대의 사건들을 역사 속에 자리 매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현대사 연구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함께 겪어온 일반 국민 역시 이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 사학계의 현대사 연구는 전공자조차 태부족인 가운데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현대사의 본격적인 연구는 80년대 중반 들어 시작됐지만 역사학자들의 외면 속에 정치학·사회학·경제학자들이 분야사로 접근해 다루는데 그쳤었다.
역사연구의 출발점이라 할 시대구분 문제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현대사의 기점을 1910년, 3·1운동, 해방 그리고 민족통일운동이 완성되는 날까지로 잡는 등 학자마다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다룬 통사류로는 강만길 교수(고려대)의『한국현대사』와 한국민중사연구회가 펴낸『한국민중사』(Ⅰ, Ⅱ)정도가 고작.
이중 강 교수의 책은 일제시대부터 4·19혁명까지만 다루고 있으며 한국 민중사 연구회가 펴낸 책은 19세기말부터 5·18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 83년께 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방면 연구자들은 현대사연구가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로 해방이후 80년대까지의 역사과정에 정치적 굴곡이 심했고 주제들이 권력의 독재와 직접 맞닿아 있었다는 점을 든다. 그런 점에서 지난 82년 국사편찬 위원회가 펴낸『한국 현대사』(탐구당)는 정치권력에 의해 당대사가 얼마나 왜곡·훼손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역사서였다.
이 책은 19세기후반에서 5공 초까지를 대상으로 하는데 마지막장「통일을 위한 노력」의 경우 민주주의의 토착화·정의사회 구현·교육개혁·개방정책 및 대북 제의 등 소단락을 통해 온통 제 5공화국 성립을 미화하는데 할애되었다.
현대사 전공의 서중석 교수(성균관대)는『현대사가 현장의 역사이므로 정치권력의 개입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종합 평가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라며『국민학교에서 대학까지 현대사교육이 실시돼 현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인식 틀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서 교수는 학계에서 현대사의 기초자료 확보가 미흡해 연구성과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국사편찬 위원회가 준비중인 현대사 자료정리 작업에 기대를 걸었다.
현대사 연구 활성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관련자료를 수집·정리, 발간계획 중인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89년부터『신편 한국사』전60권을 기획, 지난 74년 발간된『한국사』가 일제시대 초까지 다룬 데서 더 나아가 해방이후 현대사 부분도 수록할 예정.
『신편한국사』는 이미 조선시대까지는 목차 작성을 마치고 편집진이 구성됐으나 현대사부분은 내년 초 편찬 위원회를 열어 서술대상 시한과 목차구성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또 한길사에서 오는 11월 전27권으로 발간예정인『한국사』는 6공이 등장한 88년 4월까지를 현대사 하한으로 정하고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현대사부분에 80년대까지를 포함한다는 기획은 시도자체가 모험이었다』며 그러나 현대사 정리의 필요성이 높아 전공자 부족 속에서도『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결합이란 새로운 서술체제로 현대사를 담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길사의『한국사』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한 정관용·고성국씨가「60, 70년대의 정치 구조와 유신체제」「80년대의 정치사」란 장을 마련,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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