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대참사 불렀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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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항공기 대참사속에서도 40여명이나 목숨을 건졌다는건 기적에 가깝다. 주로 추락장소의 조건에 기인한 것이겠으나 군과 경찰·현지 주민·병원 등의 신속하고 헌신적인 구조활동에도 힘입은 바 컸다. 우리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블랙박스의 해독 등 사후조사가 좀더 진행된 뒤라야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으로 밝혀지든 간에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 시도가 사고의 주요 원인의 하나였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당시 목포비행장은 짙은 안개와 폭우로 시계가 극히 나빴고,강풍까지 불고 있었다. 또 목포비행장은 활주로가 짧고 지형 등의 여건상 계기착륙시설(ILS)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그러한 상황과 조건에서 세차례나 착륙을 시도한 것은 무모한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무리한 착륙 시도 뒤에는 조종사 개인의 판단 잘못이나 안전의식 결여 이상의 배경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이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 좋은 이미지의 유지를 위해 정시운항에 큰 신경을 쓰게 됐다는게 조종사들의 이야기다. 이런 회사내의 분위기가 다소 무리인줄 알면서도 착륙을 거듭 시도했던 배경요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또 회항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평판의 하락을 막아보려는 생각이 착륙시도의 근인이 되었으리란 추리도 가능하다.
자신의 생명도 달린 문제인데 까닭없이 무모하게 착륙을 시도할리야 없을 것이다. 악조건속에서도 운항을 하게 하고,그런 조건 속에서도 운항을 무사히 마친 조종사가 높이 평가되는 회사분위기가 무리한 착륙 시도를 낳은 것은 아닌지 냉철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관제시스팀에도 문제가 있는 것같다. 기상조건이 그토록 나빴다면 관제탑에서도 운항이나 착륙을 막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조종사의 착륙 시도에 그저 「알았다」고만 할 정도라면 관제탑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목포공항뿐 아니라 전국 공항의 시설과 운영체제를 전면적으로 점검해 대대적인 시설확충과 보완작업을 해야 한다. 국내선만 해도 최근 항공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육상이나 철도가 포화상태에 이름에 따라 앞으로도 항공수요는 계속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 항공노선의 신설과 운항횟수의 증설에만 급급했을 뿐 시설 확장이나 기계화,운영체계의 고도화가 뒤따르지 못했다. 이런 여건 속에서는 언제 또 어디서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가 빚어질는지 알 수 없다. 비단 국내선 뿐만이 아니다. 김포·김해·제주 등 국제공항도 시설부족,기계화의 미비로 각국 조종사들로부터 기피지역이 된지 이미 오래다.
항공기 사고는 일단 일어나면 대형이게 마련이고,그에 따라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안전에 대한 투자가 결코 비경제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경영자도,종사자도,정부도 안전이 최우선 과제라는 사실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재인식해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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