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성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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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아내가 저지르는 일곱가지 잘못을 정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명분으로 삼았다. 곧 「칠거지악」이다. 그 첫번째를 「시부모 잘못 모신 죄」로 꼽은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는데,「아들 못낳은 죄」를 음행,질투,몹쓸 병 따위에 앞서 두번째로 꼽은 것은 아무리 아들 선호사상이 뿌리깊었던 시절이라 해도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슬하에 아들을 두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부의 공동 책임이지 아내 쪽만의 책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내들은 아들 낳지 못하는 것을 자기탓이라 생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 낳으려는 고행에 스스로를 기꺼이 내던졌다. 지금의 과학적 관점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그 하나는 기자신앙에 따른 끔찍한 고행이요,다른 하나는 임신하고나서도 3개월 이전이면 정성에 따라 태아의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신념이었다.
기자신앙의 대상이 되는 바위와 부녀자의 하복부를 실(사)로 연결하고 하복부에 통증이 올 때까지 며칠밤을 지새는 습속이 있었는가 하면,아내가 임신했을때 남편이 도끼를 아내의 침상 밑에 감춰두고 아내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도 유행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종손의 집안에서는 아들을 낳을 때가지 계속 출산한 나머지 슬하에 딸만 일곱,여덟을 두는 「딸부자집」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수검사나 초음파검사로 태아의 성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일반화되어 있다. 의료법상 태아의 성감별은 불법진료행위로 규정해 면허를 취소하는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음에도 태아가 딸로 판명됐을 경우 당사자의 간절한 희망에 따라 은밀하게 낙태시켜주는 병원이나 의사가 적지않다.
전체 인구의 남녀성비가 불균형을 이뤄 남성인구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제4회 세계 인구의 날을 맞아 통계청이 발표한 현황을 보면 그 불균형은 매우 심각하다. 4세이하의 성비가 여자 1백명당 남자 1백12명을 넘어섰으며 2000년에 이르면 처녀 1백명당 총각을 1백19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아들보다 딸이 낫다」는 캠페인이라도 벌어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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