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구성·상상력 갖춘 뛰어난 평전|전상국씨의 장편『유정의사랑』|김윤식<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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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상국시의 장편『유정의 사랑』(『소설과 사상』여름호)이 집중 분재를 마치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항시 정공법으로 돌파해 나가는 전씨의 면모가 이 작품에서도 여실하여 그의 역량이 어떠함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30년대에 요절한 강원도가 낳은 작가 김유정의 생애를 다룬 속칭 평전에 해당될 터이다. 일반적으로 보아 평전이란 자료에 의거하여 한 인간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며, 따라서 연구자는 자료자체를 상상하거나 자료에 없는 부분을 지어낼 수 없음이 원칙이다. 훌륭한 평전이 씌어지지 않음은 어떤 사람도 훌륭히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전 작가 스트레이치의 명구가 이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작품도 그런 평전의 범주에 멈추고 마는 것일까. 왜냐하면 김유정도 훌륭하게 살지 못했으니까.
바로 이 문제에 정공법으로 도전한 것이 전씨의 의도다. 구성력에 남다른 집착과 엄격함을 가진 전씨이기에 이 도전이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구성은 다음 세 가지 층으로 이룩되었는데 자료의 철저성이 그 하나.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김유정 관계의 모든 자료를 섭렵·검토하는 층위란 보통의 평전이 감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친지들과의 면담도 응당 포함된다. 작가 전씨가 이 가족·친지들과의 면담에서 남다른 조심성을 보였음이 곧 작가의 남다른 구성력의 원천일 터이다.
김유정에 대한 기억을 누가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가. 조카 김영수(80)·김진수(74)씨가 그들이다. 전씨가 이들을 만나 증언을 들은 것은 작품 집필이 거의 끝난 금년 4월 초순이었다. 집필과정에서 제일 컸던 이 유혹을 작가로 하여금 물리치게 한 힘은 이 작가 특유의 구성력에서 봤다.
이것이 작품구성의 두 번째 층위였다면 세 번째 층위란 어떤 것인가. 상상력이라는 대범한 말로 이 층위를 규정할 수 있다. 문학예술의 다른 명칭인 상상력이란 선배 작가에 대한 전씨의 존경심의 표현이자 근원적으로는 전씨 자신이 갖고 있는 문학에 대한 근엄성이라 할 수 없을까. 전씨가 김유정의 죽는 장면을 판소리로 읊지 않을 수 없었던 사유도 정히 이것이었으리라.
이러한 세 가지 층위가 한가지 초점으로 집약되는 곳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기 범주를 뛰어넘어 소설 쪽으로 옮겨지는 장면이자 이 작품의 절정이다.
작중화자이자 강원도 팔렬 중학 수학교사인 노처녀(작가 자신)가 한때 김유정 집안 소유였던 금명산 자락의 산국 농장에서 본 환각이 그것. 김유정에 관련된 모든 인물·사건·색깔이 거기 뒤엉켜 커다란 굿판으로 벌어지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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