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계법 특위 무얼 논의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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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당 국고보조 없애자”엔 의원들 반론/“중앙당규모 지나치게 비대” 지적도
국회 정치관계법 심의특위(위원장 신상식)는 지난 15일부터 23일까지 선거법·정당법·지방자치법·정차자금법·안기부법·국가보안법 등 주요 법안에 대한 토론회를 벌였다. 특위는 회의결과를 현재 진행중인 법안개정 작업에 반영할 예정이다.
토론회는 법안별로 2명씩의 주제발표자가 의견을 편 뒤 여야의원들이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날인 23일 오전에는 안기부 관계자를 불러 안기부법 개정 방향을 비공개로 논의한 뒤 오후에는 국가보안법을 주재로 토론을 벌였다. 여섯차례에 걸친 토론회는 보통 하루내내 진행돼 특위위원들의 성실한 자세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자금법을 다룬 22일 토론회에서 발표자인 최대권교수(서울대)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국고보조금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의원들과 논쟁을 벌였다. 최 교수는 『돈이 없으면 쓰지 않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며 『국민의 자발적 조직인 정당은 당원이 내는 당비를 주요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정당에 대한 법인의 기탁금도 금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야의원들은 당비나 소액후원금으로는 정당운영이 어려운 현실에서 국고보조금은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을 폈다. 의원들은 법인의 합법적인 기탁금을 막을 경우 오히려 음성 정치자금이 판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편 김영래교수(아주대)는 『비밀리에 거래되는 돈의 속성상 법규가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정치인과 국민의 의식전환이 따르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며 「혁명적 발상전환」을 촉구했다. 김 교수는 정치자금의 조성과 사용내용을 완전히 공개하고 후원회 구성을 의무화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정치자금의 공개화를 위해서는 결국 금융실명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말미에 김 교수는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이를 비유로 들며 『부모들은 코흘리개가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을까하고 걱정이 태산이지만 어린이는 일단 입학하면 친구도 사귀고 제대로 적응하게 마련』이라며 「투명한 정치」에 대해 정치인들이 너무 불안해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각종 선거법의 개정방향에 대한 토론회에서는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고전적인 찬반토론이 되풀이됐다. 주제발표자가 돈이 많이 드는 선거,지역당구조 고착화,새로운 정치세력 등장저해 등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의원들은 『나눠먹기식 여야동반 당선의 폐단 때문에 현 소선거구제가 채택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전국구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대안으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정당법에 관해서는 정당 설립요건을 완화하자는 이남영교수(숙명여대) 등의 주장을 놓고 의원들간에도 찬반이 갈렸다. 『설립을 완화할 경우 온갖 정당이 난립할 것』이라는 반론에 대해 찬성하는 측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정당설립은 보다 쉬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최근 민자당이 검토했던 지구당 폐지론에 대해 『단체장 직선을 앞둔 지방자치 시대에 정당의 지구당은 오히려 「정치의 핵」이 될 것』이라며 「시대역행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의 중앙당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데 지적이 일치했다. 강신옥의원(민자)은 『미국의 민주당은 중앙당직원이 불과 1백50명에 불과하다』며 『1천명에 가까운 우리 여당의 중앙당 규모가 가위 세계적』이라고 비꼬았다. 공무원의 정당가입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야당의원들은 『여당만 좋아진다』고 펄쩍 뛰었으나 주제발표자들은 『정권이 교체되면 자동적으로 해소될 문제』라며 『야당도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지방자치 관련법 토론회는 지방자치단체·의회에 대한 기능배분·권한확대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발표자로 나선 정세욱교수(명지대)는 『현행법은 지방의회에 조례제정권을 겉치레로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 의회의 경우 담배자판기 설치금지조례를 만들고도 모법인 담배법에 처벌규정을 둘 근거가 없는 탓에 벌칙을 덧붙이지 못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한편 지역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지역간의 다툼을 조정할 「광역의회」 제도를 채택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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