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영웅『아프가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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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참가했던 중동의 회교도들에게 붙여진「아프가니스」라는 이름은 수년 전까지도『이역만리에서 공산주의 이단자들로부터 회교도들을 구출하는데 젊음을 바친 영웅』이라는 뜻으로 통했다. 그러나 정작 아프가니스탄이 해방되고 귀국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들을 대하는 모국의 시각은 국가 전복을 기도하는 광신적 테러리스트로 바뀌었다.
알제리·튀니지·요르단의 치안당국은 이들을 회교근본주의 단체에 반정부 무장투정 방법을 유입시키는 불온분자로 간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이집트는 이들을 귀국하자마자 체포, 군사재판에 회부하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반군 지원 금에 맞먹는 거국적 성금을 이들에게 보냈던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이들의 입국을 막고 있는 형편이다.
아프가니스탄 내전 이전에도 무장투쟁 세력은 회교 근본주의를 기치로 아랍 세속정권들을 위협해 왔었다. 때문에 아랍정권들이 회교 근본주의자들의 정권타도 투쟁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 이들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2만∼3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프가니스 가운데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단체에 소속되거나 의사·교사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천여 명은 전투요원이었지만 대부분 또 다른 성전을 찾아 보스니아로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과격집단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다. 알제리에선 이들 중 일부가 자신들의 복장·행동거지를 모방한 사이비 아프가니스와 함께 지난 91년 말 총 선에서 집권 직전까지 갔던 회교구국전선(FIS)내 무장세력에 가담하고 있다. 이들은 91년 대 리비아 국경 군부대를 습격했으며 지난해 요르단에서는 과격파「무하마드군」에 가담한 21명의 아프가니스들이 보안 군을 공격한 적도 있다. 튀니지의 불법 회교단체 지도자들 가운데 아프가니스로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파키스탄 영 페샤와르에는 현재 2천8백 명 정도의 아프가니스가 남아 있다. 대부분이 합법적인 체류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으며 5백여 명은 아직도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 구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늘 추방이나 체포당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쫓기는 입장이다.
파키스탄 정부도 이들의 처리문제가 큰 골칫거리다. 이집트를 제외한 어느 아랍국도 이들을 받아들일 자세가 아닌데다 이들 국가와 범인인도협정도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명분 있는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자신들을 부추겼던 세력들로부터 사갈 대접을 받는 아프가니스들은 토사구팽의 운명을 맞고 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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