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알자 암을 쫓자>(11)-주변서 떠도는 「발암먼지」석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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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암을 일으키는 「먼지」가 있다. 바로 석면이다. 석면은 뛰어난 단열성과 절연성 때문에 주로 냉난방장치 단열재·전기절연재·건축자재·브레이크 라이닝재료로 쓰며 얼핏 봐서 노란색 솜 같은 무기물질이다.
그러나 석면은 폐암은 물론 위암·대장암·복막암·후두암·흉막암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남원 교수는 『미국의 권위있는 기관인 「산업위생전문가회의」의 위해 물질 리스트에 석면은 단순치 발암성이 의심되는 단계를 넘어 「확실한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확률 5배나 증가>
석면은 몸에 한번 들어가면 평생 녹지 않으며 세균이나 먼지를 먹는 대식세포 등도 석면은 제거하지 못한다.
섬유의 작은 올 같은 석면먼지는 몸속에 자리잡은 다음에는 그 부위를 계속 자극하고 면역계통에 이상을 일으켜 장기간이 지난 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의대 산업의학센터 박정일 교수는 『석면은 폐암과 중피종(폐를 둘러싼 막에 생기는 악성종양)에 걸릴 확률을 대략 5배정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석면이 가래에 섞여 위장관으로 들어가면 위암·대장암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장벽을 뚫고 나가 복막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석면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은 이미 1935년의 일이었고 서구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석면관련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20년 이상 추적한 한 연구에서는 사망률이 일상적인 경우보다 20∼30%가 높았으며 암으로 인한 사망은 3배 이상, 특히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거의 5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거의 드문 암인 중피종이 전체 암사망자 다섯명 중 한명 꼴이라는 높은 비율로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역학조사로 석면은 암을 일으키는 인자임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석면의 피해는 단순히 관련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근무자의 가족이나 인근 주민은 물론 일반인들도 석면먼지에 늘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 안이나 지하공간의 공기에 이 먼지가 많이 섞여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는 암 사망자의 17%가 석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주로 건축물에 쓴 석면보드나 냉난방재료를 둘러싼 석면섬유 등에서 비롯됐다는 것.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70년대에 석면을 쓴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해체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 교수는 『석면은 10년 정도 지난 후 폐암을 만들고, 중피종을 일으키려면 20∼30년이 걸리기 때문에 경각심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석면 무감각증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공사장이나 작업장에서의 모습을 꼽았다.

<암 사망 17%차지>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석면이 든 건물을 해체하거나 보온재로 석면을 채운 벽면을 헐고 구조를 바꿀 때는 전체를 밀폐시키고 물을 뿌린 후 근로자들은 튼튼한 보호마스크로 무장한 후 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덥다는 이유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건물 내에서 한쪽에서는 구조변경이나 냉난방 설비개선작업 등으로 석면먼지가 날리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대로 근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석면작업자가 아닌 사람들도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백 교수는 『미국선박이 국내에서 보일러 수리를 받았는데 열 손실을 막기 위해 둘러싼 석면을 우리 근로자들이 그냥 뜯어내는 것을 보고 선원들이 모두 코와 입을 틀어막은 채 도망갔고 나중에 석면먼지 제거를 요구해 시비가 난 적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중앙난방식 건축물에는 냉난방배관 등을 석면으로 싸고 그 위에 알루미늄박으로 다시 싼 설비가 많은데 알루미늄박이 뜯어져 석면이 삐죽이 나와있는 소위 「발암건물」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마스크 쓰고 작업>
게다가 브레이크 라이닝에 석면을 쓰는 자동차가 앞으로는 안나오게 됐지만 지금도 많이 남아있어 터널이나 지하주차장 등 공기유통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는 석면먼지에 의한 피해위험이 큰 실정이다.
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석면먼지를 마시면 담배로 인한 발암성과 석면으로 말미암은 발암성이 곱하기 효과로 증가, 위험도를 크게 높인다.
석면이 암을 일으키는 것은 학술적으로는 분명하나 인체에 들어와 암을 만들려면 아주 긴 시일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법정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입증이 힘들어 미국 등에서는 석면업자들이 전면 사용금지에 반발하기도 한다.
석면은 분명치 발암인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그리고 멀리하자.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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