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기사들-「게임 이론」 문제풀이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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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양의 「게임 이론」으로 동양의 「바둑」에 도전해온 사람들이 있다. 과거 수학으로 바둑에 도전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웃음거리로 끝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만만치 않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 버클리대 수학과 교수 엘윈 빌르켐프 교수와 이곳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김용환씨 (31).
응용 수학을 전공하면서 그 중에서도 「게임 이론」을 집중 연구해온 두 사람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게임인 바둑을 수학적으로 풀어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2년만에 1단계로 「끝내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냈다.
이 프로그램 안엔 20개의 끝내기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은 이달 이 문제를 들고 바다를 건너와 한일의 바둑계에 도전장을 냈다. 15일 한국기원에 나타난 김씨는 많은 프로기사들 앞에서 「백선 1집승」의 문제를 꺼내놓고 『풀어 보라』고 했다. 처음 프로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가소롭다는 분위기였으나 막상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씨는 『이건 쉬운 문제다. 일본 프로들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며 『끝내기에서 세계 제일이라는 이창호 6단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 6단은 문제와 직접 맞서지는 않았다. 그는 프린트된 고난도 문제를 받아들고 『대단히 복잡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끝내기의 맛보기 이론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러나 실전에 큰 도움이 안될 것 같아 만나는 것은 보류하겠다』고 응수했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바둑에는 수학적인 눈으로 볼때 4분의1집, 8분의1집에서 64분의1집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바둑 이론으로는 똑같은 한집일지라도 게임 이론으로 보면 1만분의1 또는 10만분의1 차이가 난다. 이 미세한 차이가 한수 차이를 만들어낸다.』
『실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말은 수긍할 수 없다. 프로들의 바둑에서 부동의 수순으로 반집 승부가 난 바둑을 게임으로 뒤집어 보일 수 있다. 우리 프로그램은 바둑이 끝나기 30∼50수 전부터 완벽한 수순을 도출해낼 수 있다.』 동양 쪽에선 『바둑에는 3차원의 수학이 있다』고 말해왔다. 이 말은 현재의 수학으로 풀 수 없다는 얘기인데 버클리대에선 『풀 수 있다』고 도전해왔다. 현재 일본에 체류중인 벌르켐프 교수는 일본의 컴퓨터 회사와 소프트웨어 매매 계약을 이미 체결했다고 김씨는 말한다. 바둑에 대한 컴퓨터의 도전은 이미 20년 전부터 시작됐으나 컴퓨터 세계 챔피언의 실력은 아직까지도 고작 7∼8급 수준. 고도의 인공지능이 개발되지 않고는 인간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하지만 「게임 이론」과 「컴퓨터」가 바둑을 「끝내기」한 분야로 좁혀 도전해오자 사태는 만만치 않아졌다. 프로들은 『시간만 있으면 풀 수 있다』고 장담하고 게임 이론측은 『그렇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박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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