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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문명대립」시대로|새뮤얼 헌팅턴<미 하버드대행정학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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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제정치는 지금 이데올로기나 경제가 아닌 문화적 차이가 분쟁의 원인이 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국제정치상 주요분쟁은 서로 다른 문명이나 국가사이에서 발생, 문명 충돌이 국제정치를 좌우할 것이다.
세계의 문명은 상호교류·중복되기도 하고 하위 문명을 갖기도 한다. 예컨대 서구문명은 유럽과 배미로, 이슬람은 아랍과 투르크·동남아 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구인들은 세계문제에 있어 민족국가를 주요 단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 진다. 지난 몇 세기 동안은 민족국가가 중요한 단위였다. 그러나 역사를 좀더 길게 돌아보면 문명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바로 그런 패턴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주요문명으로는 서구·유교·일본·이슬람·힌두·슬라브·남미·아프리카 문명 등 이 꼽힌다. 장래에는 이 문명들이 서로 접하는 지역에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문명의 차이는 역사·언어·문화·전통, 특히 종교가 관계되는 것으로 아주 근본적이라는 점이다. 이같은 차이는 몇 세기를 내려오면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둘째로는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수 있다. 다른 문명권의 사람들끼리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문명에 대한 자각이 더 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인들은 캐나다나 유럽국가의 대미투자보다 일본인들의 투자에 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셋째, 경제·사회적 변화가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허물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아이덴티티의 위기에 편승, 많은 지역에서 종교가 근본주의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세를 떨치고 있다. 기독교·유대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 할 것 없이 이런 운동들이 활발하다.
넷째는 서구가 권력의 정점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문명권에서는 근본 회귀현상이 일어남으로써 문명자각이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아시아 화」(Asianization), 인도의 힌두교 화, 중동의 이슬람 화, 러시아의 서구화 대 러시아 화 논란 등 이 그런 운동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구가 세계적 가치관으로 민주주의·자유주의를 제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거나 군사적 우위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다른 문명권의 반작용이 더 거세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의 핵심은 서구와 기타문명의 갈등, 서구의 힘·가치에 대한 기타 문명권의 반응이 될 것 같다. 가장 좋은 예로 유교 권 국가와 이슬람권 국가가 서구의 가치·힘에 대항해 서로 협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다섯째, 문화적 특성과 차이는 정치·경제적 특성에 비해 타협의 여지가 적다는 점이다. 구 소련을 예로 들면 공산주의자가 민주주의자로 될 수 있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으로 될 수는 있어도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로 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지역주의의 득세를 짚어야 한다. 경제지역주의가 성공하면 문명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는데 그러기에 앞서 경제적 지역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명이라는 공통분모가 갖추어져야 한다.
유럽과 달리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유럽공동체(EC)에 견줄 만한 경제적 조직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다른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문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벌이는 당사국이 서로 다른 문명권에 속한다면 양국은 같은 문화권의 나라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노력하게 마련이다. 지금과 같이 이데올로기에 호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자연히 종교나 문명적 일체감에 호소하게 될 것이다. 페르시아만이나 보스니아 등에서 갈등이 계속될 경우 결국 문명적 차이를 경계로 나라들이 서로 갈라서게 될 것이다.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문명간의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서구는 파워가 서구수준에 가까우면서도 가치와 이해가 서구와 판이한 다른 문명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문명의 바탕이 되는 종교와 철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것이다. <정리=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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