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는 전격적 평화선언 나올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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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테이블에 가장 먼저 오를 화두는 무엇일까. 8일 발표된 합의문에선 '평화와 민족 공동의 번영, 조국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정상회담의 의제는 앞으로 몇 차례의 차관급 실무 접촉을 통해 조율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측은 북한 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나 북측은 남북 경협 확대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합동군사훈련 폐지 등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회담 의제를 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황이 꼬이면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다시 한 번 평양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와 정상회담 정례화, 이산가족.납북자 문제에 대해선 접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간 군사 대치 상황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평화체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종전선언'을 할 의사를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 관계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남북 간에 평화선언 또는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면 상징성이 큰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협정 채택은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해야 할 사안이나 그 중간 과정으로 두 정상이 평화선언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정상회담 이후 9월 중 열릴 6자 외무장관회담에서 평화체제 문제를 계속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의욕을 갖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해선 김 위원장이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북측은 진작부터 "핵문제는 북.미 간에 논의할 문제"라며 선을 그어 왔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남북이 합의한 비핵화 공동선언을 원론적으로 재확인하는 선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정상은 또 남북 통일 방안을 화두로 삼을 전망이다. 2000년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남북 정상은 남측이 주장하는 연합제와 북측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 방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이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풀이해 왔다. 이번 회담에선 보다 진전된 통일 방안을 의논하기 위해 연구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협 확대를 위해 군사적 보장 조치를 하는 방안 역시 필수적이다. 정상 간에 구체적 사안을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향후 장관급.장성급 회담을 통해 진전이 있도록 물꼬를 트기 위해서다. 정부 당국자도 8일 "남북 경협과 교류.협력 관계를 양적, 질적으로 한 단계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구상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산가족 상봉 확대와 납북자 문제에도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정부 관계자는 "인도주의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늘 논의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통 큰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남측의 요구를 선심 쓰듯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노 대통령의 임기 말에 이뤄진 점을 감안해 차기 정부에 부담을 줄 의제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컨대 서해 NLL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보안법 폐지 같은 문제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경협 확대를 약속하면서도 우리 정부.기업의 능력을 벗어난 장밋빛 약속을 해선 안 된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예영준.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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