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인터뷰 "북한보다 한국이 다급히 원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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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놀라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 중에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기를 늘 원했던 걸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번째 회담이라 기대치가 훨씬 높아졌다는 점이다."

4월까지 2년간 백악관에서 한반도 정책을 담당해 온 빅터 차(조지타운대 교수) 전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시 행정부는 이번 회담을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은 남북대화에 방해물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따라서 회담을 지지할 것이다."

-남북한이 이 시점에서 회담에 합의한 배경은.

"북한보다는 한국이 다급히 원해 성사됐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대선을 앞두고 대북정책과 관련, 점수를 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의 반응은 회의적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합의해 준 의도는 잘 모르지만 분명히 한국 측에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아마도 돈이 아니겠나."

-이번 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나.

"두 번째 회담은 첫 번째보다 충격 효과가 덜한 데다 국민이 훨씬 비판적.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2000년 첫 회담에서 한국은 북한이 만나주는 것으로 만족했고, 큰 대가도 지불했다. 그러나 이번엔 북핵 해결이나 남북 간 적대관계 종식에 기여하는 실질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 한데 노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 필요한 그런 높은 목표치를 설정해 놓은 것 같지는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에서 둘째)이 7일 함경북도 성진제강련합기업소를 시찰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AP,연합뉴스]


-회담에서 김정일이 한국과 미국을 향해 획기적인 평화 제안을 들고 나올지 모르는데.

"말은 아무 의미 없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한국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한 말만으로 워싱턴에 '북한이 크게 달라졌다'고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2005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을 만난 뒤 '북한이 훌륭한 얘기들을 많이 했다'고 워싱턴에 전했지만 북한이 그 말을 지킨 건 아무것도 없다."

-한국은 이번 회담에서 남북 간 평화체제 확립에 치중할 것 같은데.

"그건 아주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접근해야 한다. 자칫 평화체제 선언이 핵무장한 북한을 인정하는 결과를 빚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6자회담에 기여할 것으로 보나.

"다른 5개국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할 기회란 점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직후 '남북관계는 6자회담 진전과 연계해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번 회담도 그런 선상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북한이 비핵화, 특히 핵프로그램 신고 의지를 재확인하고 한국이 북한에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는 성명이 나오는 것이다. 그 밖에 이산가족 상봉, 경협 등 남북 간 이슈들도 진전을 봐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끝나면 미국과 중국도 참여하는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복안인데.

"북한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정상들의 만남을 기대하긴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4자 정상회담이란 형식 자체를 동의한 적이 없다. 시기상조다."

-이번 회담이 한.미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결과에 달렸다. 회담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앞당기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의 세금으로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면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한반도 평화체제=1953년 휴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 들어선 정전(停戰) 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서 준비 중인 방안이다. 정부가 마련한 이행 계획(로드맵)에는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평화선언을 하고, 이를 미국.중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이 담보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은 9월 6자회담 외무장관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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