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피랍 가족들은 국민 관심 멀어질까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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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8일 오후 3시10분쯤 서울역 1층 대합실.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알리는 뉴스 특보가 방송되는 대형 TV 앞에는 7~8명의 시민들이 유심히 지켜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산에 출장 가는 길이라는 최병문(54)씨는 "정상회담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정치적인 오해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부 강미성(33.전남 여수)씨는 "어찌됐든 남북한 정상이 계속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전 태평동에 사는 은행원 박범호(51)씨는 "이번 정상회담으로 경제협력이 보다 증진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혹시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배명훈(29.서울 석계동)씨도 "우리가 하자고 해도 북한 입장에선 차기 정부하고 하는 게 나을 텐데 지금 시점에서 왜 맞장구를 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 모임은 정상회담 준비 때문에 납치 문제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질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피랍자 서명화.경석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는 "남북 정상회담을 상당히 기대했지만, 왜 하필 지금이냐"며 "납치 상황이 좀 진척된 뒤 열어도 좋은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과 마주한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 주민들은 다소 들뜬 모습이었다. 통일촌 이완배(55) 이장은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민통선 지역과 북한에는 남북열차가 운행되고 개성공단이 조성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2차 정상회담 이후에도 보다 진전된 남북 간의 교류가 이뤄져 통일촌이 남북 왕래의 전초기지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임진각에서 만난 실향민 2세 김홍규(55)씨는 "7년 만에 재개되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앞으로 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반드시 서울에서 열려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앞당겨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보수단체들은 정상회담이 대선정략에 이용될 수 있다며 경계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대선을 4개월 앞둔 시기에 '북풍(北風)'의 재현을 내심 바라는 의중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변철환 대변인도 "정상회담(28일)이 한나라당 경선(19일)이 끝난 뒤 얼마 안 돼 열리는 만큼 대선을 고려한 일정"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자유주의연대는 "이번 정상회담은 핵심 의제도 선정되지 않았고, 비밀접촉을 통해 성사된 '졸속 묻지마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경실련은 "한반도 평화 구축과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에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가 크다"며 "군비 감축과 교류.협력의 확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자리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흥사단도 논평을 내고 "회담을 통해 더 많은 이산가족의 상봉과 납북자 문제가 논의되기를 바란다"며 "아울러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돼 민족 통일을 위한 진일보한 화해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유미.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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