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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폭 정치' 김 위원장 깜짝 이벤트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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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죽음 뒤 북한을 통치해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권력 유지'다.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따른다는 유훈 정치도, 군부를 끊임없이 회유하고 장악하는 선군 정치도,핵.미사일을 갖고 미국과 벌이는 벼랑 끝 협상, 건강과 후계자 관리조차 그에겐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8.28 평양 방문은 김정일 위원장에겐 권력 확장의 또 다른 재료가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남한의 대통령을 두 명(김대중.노무현)이나 순차적으로 수도로 불러들였다는 점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의 '위대성'을 입증하는 선전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의 정보기관이 예민하게 관심 갖는 '김정일 65세의 건강'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노 대통령을 통해 과시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란 게 정보 관계자들의 얘기다. 12월의 한국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도 없진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식 용어로 '광폭(廣幅)정치' '통 큰 정치'를 한다.

'모든 일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여 나간다'는 것이다.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은 "공산주의에도 도덕이 있습니다"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우했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방북 당시에는 "나(나이)어린 제가 가운데 서서 찍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등 겸손과 효심을 부각하려 했다.

60만 명의 평양 주민을 도로에 배치해 김 전 대통령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던 사례에 비춰 이번에도 유사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파격적으로 감동시키는 이벤트'를 준비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인사들은 "노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섭섭지 않게 해드릴 것"이라고 말해 왔다.

회담 과정에서도 그의 '통 큰 정치' 스타일이 나타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모든 사안을 김 위원장이 결정해야 하는 북한 체제의 속성으로 미뤄 장관.장성급 회담 등에서 풀지 못한 숙제를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 놓고 담판 지을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광폭 정치가 구현될 핵심 분야로는 '군사적 긴장 완화 부분'이 꼽힌다. 북한은 군사 문제는 미국과 직접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남한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6.15 정상회담 이후 급진전된 남북 관계 속에서 군사 문제가 발목을 잡아 한계를 보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군사 분야에서 물꼬를 터야 할 필요가 있다. '군사적 긴장완화'가 되면 북한 입장에선 군사비를 경제발전에 돌릴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군사적 긴장완화가 되면 6자회담과 대외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대규모 남측 자본 유치로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셈이다. 북한이 최근 '인민 생활 향상' 구호를 크게 내거는 것도 그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임기 말이긴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군사 부문에서 '이행을 담보하는 불가역적 합의'를 체결할 수 있다면 차기에 남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안정적 국면 관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어떤 '통 큰 카드'를 들고 나올지 주목된다.

광폭 정치의 일환으로 군사 용어인 '전격전'을 즐겨 사용해 온 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어떤 깜짝 쇼를 보일지도 관심거리다.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는 "김 위원장은 한밤중 대표단 숙소를 전격 방문,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고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했던 경우가 많다"며 "2차 정상회담에서도 사전에 일정을 조율했더라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하던 곳이다. 350만㎡의 면적에 3층짜리 화강암 건물로, 김 주석 사후 시신을 이곳에 안치하고 1년여간 보수 끝에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은 미국.중국.러시아 등 외국 대표단이 평양 방문 때 이곳의 참배를 요구하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의 참배 요구를 거절,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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