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정부 "우표 때문에 싸우자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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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우표 발행 계획이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대응 방안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다케시마(竹島.일본에서 부르는 독도의 이름)는 일본 영토"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시민단체.네티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양국의 외교 당국은 우표 논란이 영토 분쟁으로 비화해 양국 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신중한 태도다.

◇독도 우표 왜 발행했나=정보통신부의 독도 우표 발행 계획은 독도의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뤄졌다. 지난해 1월 생태계의 보고인 한국의 섬들을 소재로 하는 섬 시리즈 우표 발행 계획을 세우고 만국우편연합(UPU)에 이를 통보했다. 곧이어 시리즈 첫회로 독도가 선정돼 '독도의 자연'이란 제목으로 올해 4개종 2백24만장을 발행하게 된 것. 정보통신부 박재규 우편사업단장은 "독도를 먼저 선정한 것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독도우표'는 이번이 세번째다. 1954년 세가지 종류를 발행한 데 이어 2002년에도 50만장을 찍었다. 일본은 첫 발행 때 항의서를 보냈으나 2002년엔 항의하지 않았다. 정통부 관계자는 "2002년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태 확산 경계하는 양국 정부=고이즈미 총리는 9일 밤 "파문을 확산시키거나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며 수습에 나섰다. "우리도 다케시마 우표를 찍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총무상의 '맞대응론'을 일축한 것이다.

외무성도 외교적 대응은 하지 않을 전망이다. 한 외무성 관계자는 "비록 영토 문제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이번 '독도 우표'에 정치적인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의 배경에는 북한 핵 문제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국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우표 문제로 사태를 그르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신중한 자세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1일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더 이상의 대응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9일 대변인 성명에서 "독도는 역사적.지리적으로는 물론 국제법상으로도 우리의 영토며,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못박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현상 유지'가 실리적으로 가장 유리한 방안이며,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려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민감한 여론=정부 태도와 달리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본부 김종대(67)회장은 "일본 총리의 독도 망언은 최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서 확인했듯 군국주의의 부활을 꾀하려는 움직임이며, 아시아 평화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한나라당 등 정치권도 논평을 내고 '독도지키기 국민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독도사랑모임(대표 윤한도 의원)과 민족 정기를 세우는 모임(회장 김희선 의원) 등도 논평을 내고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서울=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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