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가 「거물」 눌렀다”/이변낳은 명주·양양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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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낙하산식 공천·푸대접론도 민자패인/젊은층 “우리도 어깨펴고 다니게됐다”
명주­양양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이 지역 주민들은 『김명윤 민자당후보의 「거물론」이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입증됐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유권자들은 『(김 후보가) 그동안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목에 힘주고 다니는가』라는 반발감을 서슴없이 내보였다.
그러나 김 후보의 참패를 김영삼대통령의 개혁노선에 대한 반발과 직결시키는 게 지배적인 현지 여론.
실제로 최욱철당선자(민주)는 유세때마다 『현 정부는 개혁을 잘하고 있다. 그러나… 라는 전제를 단골메뉴로 삼았다. 개혁시비보다는 김 후보의 무연고성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면서 『당선된 후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가면 그만인 사람』이라고 홍보한 것이 특히 유권자의 공감을 샀다는 지적이다.
○민자당직자 서로 비난
○…민자당의 거의 모든 당직자와 의원들이 이 지역에 들러 김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자당 명주­양양지구당의 한 당직자는 『서울에서 높은 분들이 숱하게 들렀지만 하나같이 김명윤후보가 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실만 의식해 같이 사진찍고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황명수 사무총장 등 몇몇 이해당사자만 빼고는 실제득표활동에 열성을 보이지 않아 「사공많은 배가 산으로 간」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문기 전 의원의 공조직이 사실상 강릉 김씨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었던 이유도 패인이 됐다. 이 당직자는 『이곳의 대성인 강릉김씨를 의식해 김명윤후보에게 「구속된 김 전 의원을 면회하고 그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홍보하면 좋지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으나 무시당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정책이슈보다는 전통을 중시하는 농어촌지역의 「내고장 내인물」식 성향이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이기택대표가 열심히 뛰기는 했으나 득표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그보다는 최 후보 본인이 세번씩이나 출마하면서 닦아 놓은 기반이 더 작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다만 지역감정이 유달리 강한 이 지역 정서상 김대중씨가 정계를 떠난 사실이 최 후보에게는 도움이 됐다는 분석은 있었다.
○여론조사 예측빗나가
○…민자당의 가장 큰 패인은 지역연고성을 무시한 공천이었지만 「강원도 무대접」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최욱철후보측은 최근 발표된 도별생산량 지수에서 나타난 강원도의 낙후성을 적극 홍보해 효과를 보았다. 최 후보는 나아가 『김 후보가 그렇게도 거물이라면 굳이 금배지를 달지 않더라도 지역을 위해 공헌할 것 아니냐』고 까지 선전했다.
민자당은 투표일 직전까지 여러차례의 여론조사를 통해 「7∼10%는 앞설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도시지역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의 사전 여론조사는 오차가 크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가 됐다. 속마음을 쉽사리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층의 경우 12일 오전 『이제 우리도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됐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민자당은 중앙정치무대와 거리가 먼 농어촌지역의 정서를 헤아리는데 실패한 듯 하다.
○일찌감치 축제분위기
○…11일밤 개표 초반부터 최 후보가 꾸준히 앞서나가자 김 후보는 오후 10시20분쯤 개표장인 명주군청을 떠나 침통한 표정으로 부근 숙소로 직행. 반면 민주당측 운동원들은 신이나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다 전지역에서 골고루 리드하는 추세에 고무돼 밤 11시쯤 최 후보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등 일찌감치 축제분위기. 한 민주당 운동원은 『역대 선거에서 여당후보를 절대적으로 밀었지만 남은게 없었다』며 『개혁,개혁하지만 하루하루 벌어먹는 지역주민들에게는 그 말이 잘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명주=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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