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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금산분리’ 완화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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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토론 참석자들은 금산분리 정책의 장단점, 금융산업 육성 방안 등을 놓고 두 시간여 동안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왼쪽부터 이승철 전무, 신학용 의원, 강치원 교수, 권영준 교수, 김동환 실장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 일정 부분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산분리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금산분리 완화를 정부에 건의했고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대선 후보도 ‘금융과 산업자본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임기 중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매각 과정에서 국부 유출 논란이 일고 정부의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둘러싸고 국내 자본이 역차별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금융·산업 분야 전문가들이 7일 금산분리 정책과 금융산업 육성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금융 분야 규제 너무 많아

강치원=신 의원이 다른 14명의 의원과 함께 금산분리 정책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신학용=금산분리를 해제 또는 완화해야 할 시점이다. 은행을 산업으로 봐야 하는데 금산분리만 금과옥조로 지키고 있다. 현재의 금융관련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을 엄격하게 막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자본에 의한 대형 시중은행의 인수합병(M&A)을 어렵게 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외국자본에 비해 역차별당할 수도 있다. 금산분리 폐지로 나타날 부작용은 금융감독 기능을 더욱 강화하면 된다.

▶이승철=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금융기관도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각종 규제를 받는다. 금산법에 의한 승인제도, 공정거래법에 의한 의결권 제한을 비롯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각종 제한이 있다.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권영준=돈을 빌려 가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겠다는 것은 시험 보는 사람이 시험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면서 정작 연구는 없는 것 같다.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은행은 4개에 불과하다. 금산분리 폐지는 기본을 망각한 발상이다. 금융산업은 예탁자 보호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예전부터 엄격히 규제된다. 남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것이다. 건전성·결제안정성·소비자보호가 중요하다. 금융 당국 책임자가 건전성보다 산업적 관점에서 규모를 키우자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다. 외환위기도 따지고 보면 감독 부실이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김동환=지금도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증권사도 가지고 있다. 다만 은행법 16조에서 비금융주력자, 이른바 재벌에 대해 의결권을 4%까지 허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규제는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오히려 강화하는 추세다. 금융산업 건전성을 위해서다.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면 특정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고 자금을 빼돌리며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수 있다. 효율성·공정성 훼손 우려도 크다.

산업자본이 금융 잘 할까

▶강치원=두 분이 금산분리 유지를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신학용=외환위기 전까지 우리는 만성적인 자본 부족이었다.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없었다. 제대로 된 은행자본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기업에 돈이 남아 돌고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다. 이 자금을 그대로 둘 것이냐, 쓰자는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도 더 많이 생긴다. 재벌의 사고금화 우려를 말하지만 이를 견제하기 위한 감독 규정도 있고 시장 감시도 잘 되고 있다. 과거 은행이 왜 부실해졌느냐. 특혜 주고 관치(官治) 해서 무너진 것이다. 금융산업은 성장동력이다. 더 키워야 한다.

▶이승철=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내부유보율이 720%다. 회사가 돈을 빼돌리는 것은 20년 전 얘기다. 금융업은 블루오션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금융권에 많이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기대수익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3위인데 금융산업 효율성은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31위다. 그만큼 낙후됐다. 금융 분야에서도 반도체·조선처럼 세계적 기업이 나와야 한다. 규제가 없는데 하지 않는 것과 규제가 있어서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권영준=우리 재벌이 해외에서 문제되는 일들을 많이 벌리지 않았나. 선진국에선 생각도 못할 일이다. 우리 재벌들이 그렇다. 예전과 달라진 것 없다. 산업자본이 금융을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불과 3~4년 전 LG카드 사태나 국민투신 사태 때 당시 사장이 어느 업종 출신이었는가. 여기에다 우리의 금융감독 수준도 낮다. 산업자본이 금융을 잘한다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선진 외국의 사례도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 제조업체 가운데 금융을 잘하는 회사가 어디 있는가.

▶이승철=그런 논리라면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 단속이 잘 안 되니 아예 스포츠카는 만들지 말자는 것과 같다. 사전 규제는 철폐하고 사후 감독을 잘하면 된다. 우리의 금융산업은 느슨하다. 생산방식·마케팅이 낙후돼 있다. 금융소비자도 생각해야 한다. 은행을 새로 만들어 금리도 경쟁하고 서비스의 질도 높여야 한다. 규제론자들의 대표적 수법이 과거 잘못된 것 1~2개 가지고 규제하는데 그건 곤란하다.

▶권영준=고급 스포츠카 만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형 버스 안의 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것이다.

금산분리로 국부 유출 우려

▶강치원=산업자본이 금융을 장악하면 서민과 중소기업이 돈 빌리기 더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승철=은행은 수익에 따라 대출해 준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대기업이 하든 금융전업사가 하든 시장 논리에 따라 위험과 수익에 따라 하는 것이다.

▶강치원=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85%인 것을 비롯해 주요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평균 73.6%다. 국부 유출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신학용=금융주권 수호를 위해 더 이상 외국자본에 은행을 넘겨 줘서는 안 된다.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만이 외국 자본이 10%가 안 될 뿐이다. 별다른 대책 없이 우리은행을 매각할 경우 외국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 우리·기업은행은 국내 자본이 인수해야 한다. 외환은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산업자본 빼고는 은행을 인수할 능력이 없다.

▶이승철=외국인들이 은행 배당만 9000억원 넘게 받았다. 론스타의 경우 실제 자본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은행업에서 국내기업은 오히려 차별받고 있다. 감독 규제는 강화해도 좋다. 하지만 소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큰 문제다.

▶김동환=외국자본 대항마 육성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경제주권 보호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번지수가 다르다. 은행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금산분리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됐다. 산업자본은 금융투자회사에 투자해 이를 키우면 된다.

▶권영준=글로벌 경제 시대에 수많은 사람에게 분산돼 있는 국민은행 지분을 다 합쳐 외국계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기업도 해외에 투자해 배당도 받는다. 자본에 꼬리표를 달 필요는 없다. 우리의 GDP에 기여하면 우리 기업으로 봐야 하지 않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감독을 철저히 해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은행 매각은 국내자본에

▶강치원=우리은행 매각에 대한 의견은.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은 산업자본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학용=다시 강조하지만 외환위기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은행 자본이 없다. 여기에다 은행들은 여전히 지역 점포 수를 늘리는 땅 따먹기 식 장사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은행을 국민연금이 산다고 치자. 그건 재경부에서 복지부로 관할권이 넘어가는 것밖에 안 된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 것이냐. 산업자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하는 방식은 좋다고 본다.

▶김동환=중요한 것은 우리은행 민영화의 목적이다. 바로 공적자금 회수다. 현재 우리은행의 영업 성과는 좋다. 최대한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매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산업자본에 줄 것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논의 대상이 아니다.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은행을 잘 경영해 주가를 높이고 배당 잘해 주는 쪽에 팔면 된다.

▶권영준=특정 재벌이 우리은행을 소유·경영하지 않는다면 외국 자본보다 국내 자본에 파는 것이 좋다. 현행법이 4%까지는 의결권을 주지 않느냐. 국내 15개 정도의 대기업이 모여 4%씩 사고 나머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영자는 15개 회사가 은행을 잘 운영할 사람을 민주적으로 뽑으면 된다.

▶이승철=외국 자본에 안 넘긴다면 자금과 경영 능력, 이 두 가지를 보유한 곳은 산업자본뿐이다. 15대 대기업이 모여 하자고 하는 것은 주인 없는, 지배주주 없는 은행을 만들자는 것인데 그런 방식이 잘될지 의문이다.

아직 금융업계 경영 능력 부족

▶강치원=우리 금융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할 방안은 무엇인가.

▶권영준=금융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인력이 중요하다. 얼마 전 국내 한 금융사에서 다소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드는 데 국내가 아니라 해외 인력을 활용했다고 들었다. 미국·영국·싱가포르와 같은 금융 강국을 봐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금융 전문가를 키우는 데 열심이다. 우리도 젊은 학생들, 직장인들에게 기회를 줘 세계적 금융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금융산업이 발전한다.

▶이승철=우리 금융자본 실력이 부족하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 산업자본이 금융과 접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동환=금융산업은 금융 자체만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실물경제의 발전과 함께 가는 것이다. 산업자본·금융자본이 서로 목소리 높이지 않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정리=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토론 참석자>

신학용
국회의원(대통합민주신당)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경제학 박사)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제도 연구실장(경제학 박사)

사회
강치원 강원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