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된 원화」판매 눈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원화를 오프셋으로 인쇄한 것도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한 전시회를 통해 제기되고 있어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미술이라는 예술장르에서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던 「수공성」의 개념에 정식으로 도전하고 있는 이 「인쇄된 원화」는 작품의 대량유통까지 노리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작가 박불똥씨와 미술평론가 박신의씨가 한 팀이 돼 시도하고 있는 이 오프셋작품운동은 2년간의 준비작업 끝에 마침내 4∼13일 신세계갤리리에서 박불똥전이 열리게 됨으로써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박불똥씨(37)가 작가로서 공식 활동을 해온 지난 83년부터 10년간의 궤적을 담아내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번 전시회는 그가 지금까지 해온 작품가운데 약5분의 1에 해당되는 47점을 선별, 각기 1백장씩 오프셋으로 한정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프셋 원화들은 그가 기존의 사진들로 만들어낸 작품을 직접 촬영하거나 슬라이드로 만들어 이를 다시 원색분해한 다음 판화용지에 인쇄해 일련번호를 매기고 작가 서명을 한 것이다.
따라서 복제예술의 대표격인 판화와 상당부분 닮아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판화가 작가에 의한 수공적인 과정을 중시하고 있으며 기계적인 공정이 전적으로 취해졌을 경우 이를 복제로 치부해버릴 뿐 원화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있음에 비춰볼 때 색분해과정에서 작가가 색도의 첨삭만을 지적하는 정도로 그치는 오프셋작품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박신의씨는 『판화적 기준을 중시했다면 박씨의 작품을 사진석판의 공정으로 제작할 수 있었으나 공정상 차이가 작품의 질을 변화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작경비상 엄청난 차이가 나 현대인쇄술을 적극적으로 예술에 활용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인쇄된 원화」는 그 자체가 복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원화의 개념을 지켜나갈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쇄된 작품과 작가 서명 사이에 철인을 찍어 원화가 남발되지 못하도록 했다. 오프셋제작 후 원화 파기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작가측은 『10년간의 활동을 모아내는 과정에서 최초의 발표작을 개인이 소장한 경우가 있어 원화파기작업이 함께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히고 앞으로는 반드시 파기해 이를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말했다. <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