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아내의 괴상한 웃음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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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르시아는 오월 하순 어느날 아침 아내 시실리다가 자기 방에서 크게 낄낄대며 웃는 소리를 듣고 적이 놀랐다. 가르시아는 서실에서 그 웃음소리를 들었는데 자기가 기억하는한 시실리다가 그처럼 소리를 내 웃기는 근년에 거의 없던 일이었다.
가르시아는 너무나 신기해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서실 문을 열고 부리나케 응접실로 뛰쳐나갔다.
『어머나, 웃겨. 어머나, 웃겨 정말. 오호 오호 오호….』
참고 또 참으려고 애쓰지만 도저히 참지 못해 기어이 터뜨리고야마는 그런 야릇한 웃음소리였다. 가르시아는 노크를 하는 것도 깜박 잊고 곧장 시실리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조금 전에 배달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그녀의 등뒤로 다가가며 물었다.
『여보, 무슨 일이오?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라도 났소?』
시실리다는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고개를 조금 돌려 가르시아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심술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가르시아는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되도록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참 오랜만에 당신 웃음소리를 들었소. 당신이 웃다니,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여보,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웃어 보이지 않겠소?』
그러나 시실리다는 그를 차갑게 외면했다.
『내 방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노크를 하라고 일렀는데, 어째서 오늘 아침에는 노크도 없이 당신 마음대로 들어왔죠?』
『미안하게 되었소. 당신 웃음소리에 내가 그만 깜박 잊어버렸소. 그건 그렇고 대체 신문에 뭐가 났소?』
그는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집어들었다.. 신문에 낯익은 사람의 커다란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주인공은 아르헤이였는데, 가만히 보니 수갑을 차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깜짝 놀라 기사를 급히 읽어보았다. 오래 전부터 마약밀수범으로 혐의를 받아온 아르헤이가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르헤이는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었고, 담당검사 이탈리노는 물증이 확보되어 있는 만큼 그를 구속하는 문제에는 무리가 없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가벼운 미열을 느끼면서 시실리다가 읽고 그처럼 웃지 않을 수 없었던 다른 기사를 찾아내기 위해 신문을 이리저리 뒤적여 보았다.
최근 들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사람은 역시 신임 기무사이대통령이었다. 그는 전날 열린 국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과거 군사정권 치하에서 공공연히 자행되어온 정치권의 온갖 비리를 성역 없이 사정하여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몇몇 정치인이 조만간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해설기사가신문의 대다수면을 차지하고있었다. 그러나 어느 구석에도 시실리다를 웃길만한 재미있는 코미디기사를 가르시아는 끝내 찾지 못했다.
『여보, 뭘 보고 그렇게 웃었소?』
가르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순간 시실리다의 표정이 야릇하게 일그러지면서 별안간 손가락으로 자기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당신은 아직도 내가 돈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죠? 또 정신병원에 집어넣을 요량을 하시는 거죠? 나는 다 알아요』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가르시아는 정보기관인 에프디아이 정보처리실에서 근무한 평범한 사무관이었다. 그는 주로 정치인들의 동태를 비밀리에 조사하여 대통령궁에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아르헤이를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가르시아는 그가 많은 정치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정치자금을 상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로 여당 정치인이었지만 개중에는 몇몇중진 야당 정치인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무역업체 대표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취급하는 물품도 가발과 장난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곧 그가 미국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와도 연계된 국제마약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르시아는 대통령궁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가르시아는 갑자기 해임되었다. 그는 해임 사유를 명백히 밝혀줄 것을 상관에게 서면으로 강력히 요구했다. 그의 직속상관 에스네르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무려 삼십이년이나 철권정치를 휘둘러온 노리에이대통령의 심복이었다.
밤에 여닐곱명의 괴한이 가르시아의 집에 침입했다.
『야, 너 아주 잘났구나. 너의 그 잘난 얼굴에 바람구멍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래도 상관 없겠냐?』
『그보다도 이 여자가 나는 마음에 들어. 잘 보라구, 아주 늘씬하게 빠졌잖아. 맛이 괜찮게 생겼거든.』
한 녀석이 시실리다의 가슴과 히프를 더듬었고 또 한 녀석은 그녀의 이마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도 서슴지 않았다. 시실리다가 히스테리현상을 나타낸 것은 그 직후 였다. 그로부터 최근까지 무려 일년 육개월 동안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 바람에 그녀는 사일로대학 역사학과 교수직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그녀에게 자극을 주는 어떠한 언동도 삼갈 것을 담당의사는 가르시아에게 극력 당부했다.
『가능하다면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협력해 주십시오. 자극을 주거나 혼자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펴 주셔야 합니다. 하루에 한번씩이라도 아주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가르시아는 오랜만에 에프클럽에 들렀다. 에프클럽은 전에 에프디아이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친목단체였다. 그곳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빈둥거리면서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클럽 사무국장을 만나 복직 문제를 상의했으나 좀 더 두고보자는 모호한 언질을 받았을 뿐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거기서 조만간 에스네르가 구속될 것이라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이었다. 가르시아는 시실리다가 또 깔깔대며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번엔 정식으로 노크하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들고 있던 신문을 그에게 내밀어 보였다.
『여보, 에스네르가 구속되었어요. 정말 세상 많이 변했죠? 호호호….』
가르시아는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에스네르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가르시아는 기사를 빠른 속도로 읽어보았다. 먼저 구속된 아르헤이로부터 에스네르가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 받아왔다는 물증을 확보했다고 이탈리노 검사는 기자들에게 밝히고 있었다. 에스네르 외에도 아르헤이를 비호해온 다른 정치인이 또 있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탈리노 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편은 망국병이다. 조사하여 물증이 드러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구속할 방침이다.』
기무사이대통령도 그날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현재 추진중인 사정활동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고 선언하여 이탈리노 검사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응원했다. 그와 더불어 아르헤이사건은 결국 에스네르를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어서는 안된다고 매스컴도 연일 열을 올려 떠들었다. 그러나 에스네르 외에 다른 구속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아르헤이 사건과 관련된 구속자는 없었다.
『참 이상해요.』
『뭐가?』
『뭔가 보여줄 것처럼 요란하게 떠들더니만 겨우 에스네르 정도로 끝낼 작정인가봐요.』
가르시아는 시실리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나직이 말했다.
『잡아넣기로 하면 어디 에스네르 한 사람 뿐이겠어. 마음만 먹으면 굴비 엮듯이 줄줄이 잡아넣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잡아넣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구. 그러잖아도 지금 도처에서 일손을 놓고 망연자실하고 있다는 거야.』
『왜요?』
『언제 어떤 식으로 자기한테 화살이 날아들지 몰라 전전긍긍하다 보니 일손이 제대로 잡치지 않는다는 거지. 당신도 한번 생각해 보라구 이삼년도 아니고 무려 삼십년이 넘게 군부독재가 계속돼왔어. 하루아침에 모조리 뜯어고치겠다고 약을 남용하다 보면 결국 부작용이 생기는 법이야.』
그러나 시실리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환자로 말하면 아주 심한 중병이에요. 어디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모조리 썩어 있다고 하잖아요. 아프지만 썩은 곳을 도려내지 않고는 완치가 불가능한 법이에요. 슬슬 눈치나 보다가 어물어물 넘어가 버리는 수법엔 이젠 신물이 나요. 기왕 칼을 빼들었으면 내리쳐야죠.』 『지나간 일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정작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마는 거야. 알아? 지금 우리한테 보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허물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는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찾아내는 것이야.』
그러나 시실리다는 여전히 우울한 표정이었다.
『당신이나 나나 노리에이 때문에 신세 망친 피해자라고요. 당신은 분하지도 않아요? 실컷 부려먹고 헌신싹처럼 내던져 버린 배신자들이라고요.』
시실리다는 다시 웃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그녀는 거의 하루내내 자기 방에서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르시아가 말을 걸면 오히려 더 심한 히스테리현상을 나타낼 따름이었다. 그녀의 우울증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가르시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깔깔 소리내어 웃게 하는 방법도 그는 알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자기방에 들어가 에프디아이에서 근무할 당시 사용했던 낡은 수첩을 벽장 구석에서 꺼내었다.. 거기에는 그가 틈틈이 기록해 두었던 많은 정보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그중 한사람을 골라내어 타자기 앞에 마주앉았다. 그가 점찍은 사람은 노리에이 치하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산체스였다. 가르시아는 산체스가 아르헤이를 비호해준 대가로 사십만달러를 수뢰한 사실을 타자기로 비교적 소상히 옮겨 적었다. 그는 그것을 여러장 복사해 그날 저녁에 신문사와 대통령궁으로 보냈다. 그러니까 익명의 투서였다.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가르시아는 자기 방에서 시실리다가 깔깔 소리내어 웃는 예의 그 야릇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정종명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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