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카르자이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소련군에 맞서 싸웠던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출신인 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보다 본질적으론 내전 종식을 바라는 아프간 국민의 소망이 나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나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30여 년간 끌어온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러나 탈레반이 최근 세력을 확장하면서 온 나라가 전쟁에 휩싸였다. 1996년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집권한 탈레반은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세웠다. 엄격한 이슬람식 사회질서를 강요했다. 학정(虐政)도 일삼았다. 탈레반은 아직도 그런 사회를 꿈꾸고 있다.

 탈레반의 목표는 재집권이다. 재집권을 위해 납치·살해 등을 합리화한다.
 그런 탈레반과 나는 전쟁 중이다. ‘카불 시장’이라는 국제적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평화 정착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인 피랍사태가 발생했다. 23명의 한국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레반에 끌려가 인질이 됐다. 그중 두 사람,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는 살해당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다.

 탈레반은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탈레반 수감자와 한국인 인질 맞교환’을 조건으로 내건 채 배수진을 쳤다. 애가 탄 한국 정부는 맞교환에 응하라고 목을 죈다.

 3월 이탈리아 기자 납치 사건 때 맞교환한 것을 거론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때 나는 분명히 ‘일회성 거래(one-time deal)’라고 못 박았지만 한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나는 당시 ‘맞교환’ 이 잘못된 조치라고 후회하고 있다. 잇따른 아프간 국민과 외국인 피랍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 수반으로서 민심을 외면할 수 없다. 이탈리아 기자와 함께 납치됐던 아프간 기자는 참혹하게 참수된 채 발견됐다. 민심이 분노로 들끓었다. “자국민 납치에는 손을 놓고 있던 정부가 왜 외국인이 납치되면 온갖 것을 해주느냐”는 나를 향한 국민의 분노를 지켜봤었다.

 그럼에도 내가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2000명의 전투병을 파병시킨 이탈리아가 ‘철군 카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가 철군할 경우 아프간은 내전 종식이라는 희망을 접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국은 연내 철군을 강조하며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피랍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사실상 연내 철군을 재확인하는 듯한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의 협상 조건은 밉상스럽기만 하다. 맞교환을 전제로 경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 내전 종식을 위한 노력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아프간이 탈레반 수중에 넘어간 뒤 경제 지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한국의 언론은 주권국가의 대통령인 나를 미국이 세운 괴뢰정권의 하수인으로 치부하고 있다. ‘미국 역할론’을 넘어서 ‘미국 책임론’까지 거론하며 아프간 정부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

 나는 한국군 동의·다산부대의 눈부신 성과도 눈에 차지 않는다. 미군이 경호를 맡고 있는 바그람 기지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그런 부대에 의미를 부여할 만큼 아프간의 전황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이 맞교환을 그토록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탈레반 소탕에 기여할 방안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나도 ‘특별사면’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프간의 평화 정착이다. 결코 돈이 아니다. 나의 절규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