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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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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탈레반이 통치하던 시절(1996∼2001년)의 아프가니스탄에는 종교경찰이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있었다. ‘탈레반식’ 이슬람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단속하고 징벌하는 게 주 임무였다. 굳이‘탈레반식’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네들의 율법 해석이 다른 이슬람 교파들과 동떨어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남자는 반드시 턱수염을 기르고 여자는 얼굴까지 뒤덮는 부르카를 입도록 의무화됐다. TV 방송, 운동 경기, 공연 활동, 사진 촬영, 가무(歌舞) 행위 등은 엄격히 금지됐다. 스포츠 경기가 사라진 운동장에서는 종교경찰에 적발된 율법 위반자에 대한 공개처형이 때때로 자행됐다.

  이교도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했다. 힌두교도에게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노란색 배지를 가슴 부위에 달고 다니라고 지시했다. 종교경찰이 이슬람 사원에 참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속할 때 힌두교도들이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당사자로선 참기 힘든 모욕이자 차별이었다.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에게 별 표식을 강제로 부착시킨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2001년 3월의 바미안 석불 폭파는 그 결정판이었다. 고대 실크 로드 주위에서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동서양의 교차로를 오가던 여행자들에게 자비로운 미소를 보내주던 거대 불상은 한순간에 무참히 흙더미가 되고 말았다. 간다라 미술을 대표하는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은 그들에겐 ‘그릇된 우상숭배’의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이란 이름 아래 행해졌다. 때로는 엉뚱한 신봉자를 낳기도 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보복공격에 나선 미군에게 붙잡힌 포로 가운데엔 놀랍게도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의 미국 청년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샤리아(이슬람법)가 온전히 구현되는 땅인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 스스로 탈레반 전사가 됐다”고 밝혔다.

 본시 화해와 관용의 종교를 표방하는 이슬람도 해석이 잘못되면 탈레반과 같은 이단을 낳는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에 기독교도들은 불타오른다. 하지만 상대는 누구보다 이슬람 율법에 충실하다고 믿는 탈레반. 그들에게 “당신들의 영혼을 구제하겠다”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번 인질사태를 ‘신(神)의 업무를 수행하는 두 세력 간의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인질 구출 협상보다 천배 만배 더 어려운 것이 신의 업무를 자임하는 두 세력의 충돌을 해소하는 일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