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말 채널 옮기는 AFKN 방송국장 스타중령(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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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관계 위상변화 실감/「문화오염」비난도 거셌던 방송43년/통제시절 무검열 뉴스 인기 많았죠
지난 50년 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에서 첫 전파(라디오 AM)를 발사,이땅에 방송의 역사를 일군 주한미군방송인 AFKN(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그간 해외주둔미군 TV방송중 유일하게 전국 네트워크인 VHF(초단파방송·Very High Frequency)2를 사용,「전파주권침해」등의 논란을 불러왔던 이 방송이 7월말로 채널을 극초단파지역 채널인 UHF(Ultra High Frequency)34로 이전하게 된다.
TV방송 시작후 36년만에 가용채널수가 많은 UHF로의 이전으로 『한미관계의 위상변화를 느끼게 한다』는 등 관심을 모으고 있는 AFKN의 채드 스타 국장(44·중령)을 만나 주한미군방송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본다.
○UHF로 시청가능
­우선 이 방송의 인력 구성,방송 역사,프로내용과 편성방법등을 알고 싶다.
『한국에서 방송을 시작한 것은 43년전의 일이다. 50년 10월에 라디오방송을,57년부터 흑백TV방송,77년부터 컬러방송,89년 6월부터 24시간방송을 시도했다. 현재 서울 용산에 본부와 오산·평택·부산·군산등에 7개의 지국이 있는데 육·해·공군 및 미국 민간인·한국인(19명),카투사(미육군배속 한국군인)등 1백36명이 종사하고 있다. 현지 뉴스방송을 위해 기자는 12명이 뛰고 있다. AFKN은 기본적으로 워싱턴에 본부,로스앤젤레스에 실무사무국을 둔 AFRTS(미군방송본부·Armed Forces Radio and TV Service)의 한국지역 네트워크다. AFRTS는 미상업방송으로부터 프로를 구입,해외군사방송용으로 공급한다.』
­올해부터 AFKN채널이 VHF에서 UHF로 바뀐다고 하는데 시청자 입장에서 달라지는 상황은 어떤 것인가.
『이전해도 가시청권에 변동이 없도록 출력조정등 기술적 보완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국내 한국인 시청자들도 UHF안테나를 설치한후 로터리 채널식 수상기 사용자는 VHF채널을 U에 맞춰 34번으로 돌리면 된다. 버튼식 채널로는 그냥 34번을 누르는 것으로 아무런 변동없이 시청할 수 있다. 별도의 안테나설치 얘기를 했는데 여러분이 갖고 있는 수상기는 이미 양쪽을 다 커버할 안테나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안다. UHF는 전파의 성격상 전파 전달지역이 다소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채널 이전에 즈음해 한달간 VHF·UHF채널을 병행해 홍보방송을 할 예정이다.』
­AFKN이 기본적으로 주한미군들을 위한 방송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한국인 시청자들도 상당히 있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방송의 내용에 대해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하는데 이에대한 방송사측의 입장은 어떠한가.
○한국입장존중 노력
『우리는 주둔국의 입장을 존중하려 애쓰고 있다. 주한미사령부 홍보실·한국 정부와의 대화 창구라 할 수 있는 주한미대사관과의 협의아래 한국인들의 정서등에 역작용을 하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은 가능한한 내보내지 않고 있다. 영국 템즈TV프러덕션이 88년에 제작한 6·25관련 다큐멘터리 6부작인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Korea,The Unknown War)도 92년 6월 1회분을 방송한 후 이 프로가 편향적인데다 한국인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준다는 한국측 지적에 부닥쳐 방송을 중지한 적도 있다. 미군방송본부에서도 프로를 공급할 때 문제가능성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일러준다. 우리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매년 「주둔국 민감사항목록」을 작성,활용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금기사항 목록이 많았으나 올림픽개최 이후 상당히 달라져 지금은 크게 문제되는 것이 없다.』
­AFKN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제 과거의 얘기가 돼버렸지만 AFKN뉴스는 한국인들에게 한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한국 언론매체를 통해 완전한 뉴스를 접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 많은 지식인들이 이 방송을 통해 검열당하지 않고 삭제되지 않은 뉴스를 접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다. 우리 방송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한미 두나라 사이의 편견을 해소하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어떤 한국인들은 이 방송이 한국의 문화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능한한 주둔국 문화를 존중하려 애쓰고 있다. 우리가 아침방송에 한국의 애국가 독창을 삽입한 것도 한국인에 대한 우호의 표시다. 또 방송 초기에는 한국측이 방송을 먼저 시작한 우리측에 기술적 협조등을 요청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한국에서 이 방송이 겪었던 에피소드나 사건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우리는 77년에 컬러 TV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컬러방송 능력이 있었음에도 흑백방송만을 허용했는데 한국사람들이 컬러 수상기를 사들여 미군방송을 봐 이것이 사회문제로 언급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도 일정시간만 컬러방송이 허용돼 몇시간 컬러를 하고 나머지는 흑백으로 내보내다 점차 컬러시간을 늘려간 적이 있다. 또 83년부터 위성방송 시스팀을 들여와 우리 방송이 내용·신속성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특히 뉴스를 미국과 동시에 수신해 방송함으로써 현저한 변화를 가져왔다. 또 88올림픽때는 여의도 국제방송센터에 스튜디오를 설치,한국방송은 물론 미국 NBC와 협력해 중계방송을 성공적으로 이끈 점은 우리 직원들에게도 아주 각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편견해소 기여자부
­19대 방송국장으로서의 자신을 소개해달라. 또 방송국장의 역할은.
『나는 미국 유타주립대학 ROTC(학도군사훈련단)출신으로 71년에 군복무를 시작했다.
전공은 신문방송학이었고 다시 골든게이트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는 81년이후 모두 7년간 근무한 적이 있고 방송국 근무는 91년 7월 이곳에서 시작했다.
임명전 미군방송본부에 의해 CNN방송과 터너방송센터(아틀랜타소재)에 보내져 훈련을 받았다. 나의 역할은 인력·장비·자금을 적절히 활용해 방송제작이 원활하도록 하는 일이다.』<고혜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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