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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위협하는 '짝퉁 차이나'의 도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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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중국 관리들이 행인들을 상대로 열심히 가짜 술 판별법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 질량검사검역총국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 유통되는 소비자 제품의 5분의 1가량이 불합격 상태다. 그중에서도 식품 안전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이에 중국상업연합회는 중국에선 처음으로 (만두소 등의) ‘식품 재료’에 관한 국가 표준을 만들어 올해 안으로 공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P=본사특약]

황정일 주중 한국대사관 정무공사가 베이징 광화(光華)로에 위치한 클리닉을 찾은 건 지난달 29일 오전. 전날 저녁 잡무 처리를 하며 대사관 부근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은 게 탈이었다. 심한 복통에 설사가 멎지 않자 직접 차를 몰아 외국인이 비교적 많이 출입하는 '비스타 클리닉'을 찾았다. 그러나 링거를 맞기 시작한 지 20분 만에 호흡장애를 일으켜 숨지고 말았다. 52세.

한국 외교관이 중국 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건 한·중 수교 15년 이래 처음이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샌드위치보다는 링거액에 문제가 있었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황 공사가 숨진 당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가짜 약품을 대량으로 제조해 시중에 팔아온 일당 15명을 경찰이 체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공장을 차려놓고 가짜 알부민과 광견병 백신, 수혈용 주사액 등 모두 67개 품목의 가짜 약품들을 생산해 왔다.

중국에서의 가짜 사건은 일상화된 느낌이다. 그래서 가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붙는 수식어가 있다. "이번에는 또 OO 가짜”라는 식이다. "도대체 중국산 가짜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탄식도 나온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가짜 상품 중 하나는 술이다. 목숨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가짜 술로 중국이 떠들썩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998년 춘절(春節·설) 때 산시성 숴저우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메틸알코올로 빚은 가짜 술을 마시고 222명이 중독돼 27명이 사망했다. 아기들이 먹는 분유도 조심 품목이다. 2004년엔 안후이성 푸양에서 가짜 분유 사건이 터졌다. 단백질 함량이 정상 분유의 10%에 불과한 엉터리 분유를 먹고 수십 명의 아기가 사망했다. 또한 많은 아기가 머리만 기형적으로 커지는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7월 발생한 '골판지 만두' 조작 사건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만두소를 골판지와 돼지고기를 6대 4 비율로 섞어 만들었다는 베이징 TV의 보도가 사실은 공명심을 탐낸 베이징 TV 임시 직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중국 당국이 발표하긴 했지만, 뉴스도 짝퉁이 생산되는 중국에서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오락가락해지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3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식품이 유발하는 질병에 걸린다.

가짜 사건은 중국 내 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중국발 짝퉁으로 세계가 떨고 있다. 6월 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중국산 치약 수입을 금지했다. 치약에 독성 화학물질인 디에틸렌 글리콜(DEG)이 함유된 걸 발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DEG는 자동차 부동액을 만드는 데 쓰이는데 중국 회사는 치약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 DEG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FDA는 이에 앞서 4월 한 달 동안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식약품 중 107가지를 통관 보류했다. 유해물질이 든 화장품과 가짜 약품도 적발했다. 특히 화학물질이 함유된 중국산 사료를 먹은 애완동물이 잇따라 죽는 사건이 발생해 미국을 경악시켰었다.

5월 초까지 FDA가 접수한 애완동물 중독 건수는 4000건. 이 중 16건은 실제로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됐다. 이쯤 되자 미국 유타주에 있는 국제건강식품공사는 자사 제품에'중국산 원료 없음'이라는 표지를 붙이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중국에 품질검사 제고를 촉구하고 있다. EU 비식품류 제품 질량통제센터에 따르면 2006년의 경우 중국은 수출상품의 48%가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품질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라는 오명을 안았다. 2위는 독일이었으나 그 비율은 5%로 중국과는 큰 격차를 보였다. 중국산 랜드윈드 SUV는 독일의 한 자동차 클럽으로부터 충돌시 안전평가에서 20년래 최악의 등급을 받기도 했다.

이쯤 되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의 도덕성 문제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물론 가짜가 중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느 나라나 다 있다. 뉴스위크 최근호는 짝퉁이 판치는 오늘날의 중국이 악덕재벌과 조직폭력, 배금주의가 판쳤던 100년 전의 미국과 아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도 별반 나을 게 없다.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사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면 왜 중국의 짝퉁이 지금 이 시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규모'가 다르다는 점이 꼽힌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세계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치는 영향이 크고 위험 또한 높은 것이다. 멈추지 않는 중국산 짝퉁 브레이크 패드를 장착하고 지구촌을 누비는 위험한 질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중국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중국의 반격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중국과 외국의 제품 안전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둘째는 중국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에서 엄격한 품질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는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것인데 '중국 때리기'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의 부상에 제동을 걸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특히 미국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후보들이 '중국 때리기'를 통해 표밭을 관리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미 대선에서 중국을 때려 득이 되면 됐지 손해 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중국 입장에선 여간 곤혹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달 27일 '전국품질공작회의'에서 가짜의 폐해로 세 가지 사항을 꼽았다. 첫째는 개인의 건강과 이익에 마이너스가 되며, 둘째는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셋째는 국가의 이미지가 구겨진다는 것이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 당국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가짜 단속도 전례 없이 강도 높게 실시되고 있다. 지난달 10일엔 정샤오위(鄭篠萸) 식품약품감독관리국 국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전격 사형에 처했다. 혐의는 649만 위안(약 8억4370만원)의 뇌물을 받고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형이란 극형이 내려진 것은 국가를 망신시켰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D-1주년을 맞는 8일부터는 '베이징 올림픽 식품안전 감독체제'를 가동시킨다. 생산부터 가공, 포장, 저장, 운송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때 제공될 식품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일일이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마음만 먹으면 추진 속도가 빠른 중국 행정의 장점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소식도 들린다. 중국 당국이 골판지 만두 조작 사건 이후 식품위생 문제 등과 관련된 보도에 통제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베이징시 당국이 베이징 언론에 중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도하는 기사를 일절 다루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속담에 병은 알리라는 말이 있다. 그래야 치료 방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짝퉁이라는 환부가 아프겠지만 이를 감추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드러내 놓고 가짜 사슬을 끊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도 중국 사회의 한 단계 더 도약이 아니던가.

유상철 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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