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축구영웅 피아퐁 - 왕년의 골잡이 김용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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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피아퐁<左>과 김용세씨가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피아퐁,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다리도 현역 못지않게 단단하고.”

“용세 형님은 왜 그렇게 변했습니까. 처음엔 못 알아봤어요.”

20여 년 세월을 건너뛰어 두 축구 스타가 만났다. 1985년 한국프로축구 득점왕을 차지한 태국의 축구영웅 피아퐁(48·당시 럭키금성), 그와 마지막 순간까지 득점왕을 다퉜던 김용세(48·당시 유공)씨. 두 사람이 2일 저녁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근처 음식점에서 마주앉았다. 피아퐁은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 올스타전에 초청받아 21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고, 경기도 파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씨는 피아퐁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달려왔다.

두 선수는 85년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12골로 득점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동률일 경우 출전 시간이 적은 선수가 득점왕이 되는데 둘은 출전시간도 똑같았다. 9월 22일 오후 2시 인천에서 유공과 대우, 오후 4시에 럭키금성과 상무가 경기를 했다. 김용세가 먼저 나왔다. 피아퐁은 “용세 형님이 슛을 할 때마다 속이 바짝바짝 탔죠”라고 했다. 김용세는 90분을 뛰었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 피아퐁이 전반 45분을 뛰고 골을 넣지 못하자 럭키금성 박세학 감독은 후반에 최진한과 교체했고, 결국 득점왕은 피아퐁의 차지가 됐다.

피아퐁은 “용세 형님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뤘어야 하는데…”라고 했다. 당시 득점왕에게는 골든슈(금 도금을 한 축구화)를 부상으로 줬다. 피아퐁은 “지금도 골든슈를 반 잘라서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유공이 럭키금성-상무전 뒤에 경기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경기 전날 일정이 바뀌었어요.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소중한 추억일 뿐”이라며 “피아퐁과 동갑이니 앞으로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91년 은퇴할 때까지 165경기에서 53골을 넣으며 ‘장신 골잡이’로 이름을 날렸다.

피아퐁은 김씨를 “키가 크면서도(공식 기록은 1m92지만 실제는 1m88) 헤딩뿐 아니라 발 재간도 좋았던 선수”로 기억했다. 김 씨는 “피아퐁은 실력도 있었지만 워낙 붙임성이 좋아 크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게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피아퐁이 말을 받았다. “한국 수비수들이 워낙 거칠었고, 특히 현대 선수들이 심했어요. 현대와 경기 전날에는 잠이 오지 않았을 정도였죠.”

피아퐁은 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사(名士)다. 현역 대위로 태국 공군팀 감독이면서 축구 해설도 하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내가 한국에서 인연을 맺었던 분들을 초청해 태국 연예인 올스타와 친선 경기를 주선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씨가 “나를 빠뜨리면 혼날 줄 알라”고 했다. 둘은 호탕하게 웃으며 소주로 ‘러브샷’을 했다.

정영재 기자<jerry@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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