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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단체 '미국 책임론'에 시민들 '덤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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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 반미 성향의 단체가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국인 납치의 궁극적 책임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에 탈레반 죄수의 석방뿐 아니라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도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할 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협상력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도 이번 사태가 '반미'로 번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3일 "일각에서 반미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은 미국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정부는 평가한다"며 "반미로 해석될 성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동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문화인류학) 교수는 "미국 책임론은 탈레반의 납치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민간인 납치를 미국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진단했다. 2001년 미군의 탈레반 공격을 '합법 정부인 탈레반에 대한 침략전쟁'이라는 반미단체의 주장과 관련, 이 교수는 "당시 탈레반은 여성 인권 탄압과 문화 말살 정책으로 국제적 지탄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납치가 미국의 강요에 의한 한국군 파병 때문'이라는 주장도 "사실관계에 충실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영수 서강대(정치외교) 교수는 "최근 탈레반의 납치 행각은 파병 여부를 떠나 모든 국적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납치 범죄를 저지른 탈레반보다 파병된 한국군을 탓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피랍자 가족들도 반미 운동을 경계하고 있다. 가족들의 석방이나 구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1일 미국대사관을 방문할 당시 가족들은 일부 단체의 동행 요청을 거절했다. 가족 대표 차성민(30)씨는 "미국에 협조를 부탁했을 뿐"이라며 "(납치의) 책임은 봉사단에 있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덤덤했다. 인터넷엔 "사람 목숨을 볼모로 반미를 선동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가(아이디 'rokhalla')" "남북 간의 문제도, 국제 문제도 모두 '미국 탓'이라는 굴절된 시각의 되풀이('wonsang5404')"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상임대표 문규현 신부 등), 한국진보연대(민주노총.전농 등의 연대조직)는 평소에도 강한 반미 성향을 보여왔다.

천인성 기자.강지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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