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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계이야기

생활 속의 공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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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40년 11월 미국 워싱턴주에서 대형 현수교인 타코마교가 가벼운 바람에 마치 더운 날 엿가락처럼 흐물흐물해지며 흔들리다가 무너져 버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다리는 시속 190㎞의 바람에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었지만 당시의 바람은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거대한 다리를 무너뜨린 것은 바로 ‘공진(resonance)’ 이라는 기계적 현상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체들은 모두 ‘고유 진동수’라는 것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철판을 망치로 가볍게 한 번 두드리면 이 철판은 부르르 떨며 흔들린다. 이 같은 흔들림은 물체마다 고유한 수치가 있다(고유 진동수). 1초에 세 번 떨리는 물체가 있고, 다섯 번 떨리는 물체가 있는 식이다. 이 철판에 센서를 달아 1초에 몇 번 흔들리는지 측정해 다섯 번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철판의 고유 진동수를 5㎐라고 표시한다. 이 철판은 망치로 있는 힘껏 세게 한 번을 치든, 약하게 한 번을 치든 다섯 번만 떨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철판을 초당 다섯 번씩, 즉 5㎐ 주기로 계속 쳐보자. 그러면 몇 초도 되지 않아 이 철판의 ‘흔들림의 폭(진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공진 현상은 이처럼 어떤 물체에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의 주기가 고유 진동수와 맞아떨어졌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이론상으로 공진에 걸리면 물체가 흔들리는 폭이 무한대에 이른다.

타코마교의 경우 바람이 다리 상판을 지나갈 때 상판 표면을 쓸면서 지나가던 공기가 표면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박리’가 일어났다. 박리가 일어나면 그 부분에는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공기압의 차이가 생겨 상판이 순간적인 압력을 받게 된다. 이러한 박리는 바람의 속도와 상판 표면의 거칠기 등에 따라 일정한 주기로 일어나게 되고 그러면서 다리를 일정 주기로 두드리는 효과를 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주기가 다리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 해 붕괴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전 세계가 공진 현상 때문에 당한 피해 중 가장 큰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생활 속에서도 공진을 경험할 수 있다. 자동차를 공회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차체가 유난히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회전수가 바로 차체를 공진시키는 공진점이다. 기계 설계자들에게는 이 공진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자동차나 터빈과 같이 회전 부위가 있는 기계는 필연적으로 회전에 의해 가해지는 주기적인 충격이 있다. 이 때문에 여러 부품을 종합해 기계를 설계할 때는 조립되는 기계마다의 복잡한 고유 진동수 체계를 피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진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주기적인 충격은 아주 작은 것이어도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설악산을 단체로 등반하면서 케이블로 설치된 다리 위에서 단결력을 과시하겠다며 발맞추어 걷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잘못 공진점에 걸리면 다리가 무너져 집단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매일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들은 공진점을 생각하기 바란다. 어느 순간 아이가 미쳐 버릴 수도 있다. 주기적으로 바가지 긁는 부인도 남편이 공진점에 이르면 집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공진이 재미있게 응용되는 예도 있다. 그네다. 엄마가 아이의 그네를 밀어줄 때 타이밍만 잘 맞추면 그냥 힘들이지 않고 툭툭 쳐주기만 해도 아이의 그네가 더 높이 올라간다. 엄마가 밀어주는 힘의 주기가 그네의 진동수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네를 밀어주는 엄마의 손처럼 주기적인 좋은 충격(?)은 사는 데 필요하기도 하다. 바쁜 아빠들이 매 주말 저녁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거나 영화관에 가는 것을 즐긴다면 가족들이 느끼는 행복의 진폭이 무척이나 커지지 않을까?
 

양종서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약력:서울대 조선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대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엔지비(현대차그룹) 신규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