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자극으로 치닫는 청소년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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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청소년책 시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첫째 배경은 논술 바람이지만, 고단한 요즘 출판계의 현실도 한몫 합니다. ‘작품만 좋으면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다→일단 ‘권장도서목록’에 오르면 연 1만부 판매는 가능하다→해당연령 아이들이 매년 자라올라오므로 그 효과가 10년은 간다’의 공식이 성립하는 게 청소년책 시장이라는 거죠. (물론 어린이책에도 똑같은 공식이 적용되지만, 이미 포화상태랍니다.) 초판 2000부, 3000부도 소화 못하고 사라져버리기 십상인 성인책보다 한결 안정적인 분야라는 분석입니다.

 그 기대 덕인지 청소년 성장소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번 주 신간만 해도 대여섯 권이 눈에 띕니다. ‘사계절 1318문고’로 나온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에는 고1 여학생 세 명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친구 아버지와 원조교제를 합니다. 다른 한 명은 가정폭력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함께 살게 된 사촌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합니다. 또 학교에서는 변태 체육교사의 성희롱에 시달리지요.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학교에서 왕따입니다. 키가 작고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랍니다. 그 왕따 아이의 엄마는 무당이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배다른 동생은 가출을 합니다. 또 여덟 살 때 당한 성폭력의 기억 때문에 손을 자해해 불구가 되었고, 급기야 거식증에 걸려 쉼터로 들어갑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갖은 문제들에 숨이 턱 차오릅니다. 등장인물이나, 독자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틈이 없습니다. 이 소설의 귀결점은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데, 어지간한 독자가 아니고서야 알아채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달포 전 내놓은 또 다른 청소년소설 『쥐를 잡자』(푸른책들)도 만만찮습니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고1 주인공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됐고, 낙태 수술을 받고 자살을 합니다.

 한 출판사 대표는 “논술 때문에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은 이슈 제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논쟁거리를 다루는 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쉽다는 것입니다. 또 현실을 떠나 지나치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상만 다뤘던 그 동안의 청소년물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문제를 가득 다뤘다고 문제 있는 책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제 막 도약을 꿈꾸는 국내 청소년 소설이 ‘더 자극적이게, 더 독하게’로 경쟁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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