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안정 비 라모스정권/“탈후진국”몸부림 한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수출주도형 경제정책 가속화/외국인투자법 효과… 한국투자규모 커져
「제2의 혁명으로 산업화를」「필리핀 2000년」.
지난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필리핀에서는 지금 모처럼 다져진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탈후진국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페르난도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독재하에서 극도로 저하된 국민들의 창의성을 높이고,사기업 주도의 수출주도형 경제정책과 관광산업강화로 오는 2000년까지는 신흥산업국가로 발돋움한다는 것이다.
피델 라모스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후 먼저 경제개발에 절실히 필요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부정부패·쿠데타·사회범죄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들의 표정이나 TV·신문들을 보면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읽을 수 있다. TV나 신문에서는 연일 「필리핀 2000년」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의 「경제기적」을 비롯,각국의 경제 성공사례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마닐라 주변의 공업단지에는 산업화를 외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무역 및 산업부의 토머스 알칸타라차관은 『이제는 기간시설 확충과 전력문제해결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제,『남은 일은 외국투자가들을 유치하는 것』이라면서 한국기업의 필리핀투자를 당부했다.
라모스 대통령의 이미지쇄신 노력은 어느정도 적중,지난 91년에 채택된 신외국인투자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외국인투자법은 경쟁국가인 베트남이나 중국의 성공사례에 자극받아 만들어졌으며 외국자본에 아주 개방적이다. 이 법은 상당분야에서 외국인에게 1백% 전액투자를 허용하고 있으며,투자과정도 대폭 간소화했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외국인의 대필리핀 투자는 91년도의 같은 기간보다 33%가 증가한 7억달러를 기록했으며,이에 힘입어 91년에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던 경제도 성장세로 돌아섰다. 한국인의 필리핀 투자도 지난해 6월말 현재 70여건 1억달러에 그치고 있지만 갈수록 투자규모가 커지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인들은 필리핀 노동법규에 정한 연금부담등을 고려하면 필리핀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인근 인도네시아등에 비해 크게 높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영어권이면서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풍부할뿐 아니라 정치적 안정을 어느 정도 이뤘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필리핀 국민과 관리들이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마닐라시내와 주변을 돌아보면 그 문제들이 바로 마르코스 독재정치의 폐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불결한 주거환경등 국민들의 빈곤은 둘째치더라도 3백억달러에 달하는 외채는 다 어디로 흘러갔는지 도로·통신·하수도등 기간시설이 극히 부족한 실정이고 전력난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전력난 때문에 마닐라에 인접한 카비테·라구나·바탕가스·리잘·케손등 5개주로 구성된 칼라바르손지방의 공업단지를 선호한다. 이곳에는 정부가 조성한 수출가공지역(EPZ)을 비롯,한국의 삼성등 기업들이 조성한 공업단지가 10개나 있으며 대부분이 자체 전력시설과 인력관리시스팀을 갖추고 입주 기업들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마닐라=정명진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