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크쇼 진행자|닫힌 마음 열어주는 말의 조율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최근 들어 TV에 일어나는 두드러진 변화중의 하나는 토크쇼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대담이나 토론프로는 많았지만 오락적 요소를 가미한 미국적인 토크쇼는 89년 봄 KBS의『자니윤 쇼』가 신설되면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송사들은 우리나라처럼 이야기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서 과연 토크쇼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관망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자니윤 쇼』가 기대이상의 인기를 끌자 앞다퉈 토크쇼를 신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는 SBS의『주병진 쇼』를 비롯, KBS의『밤으로 가는 쇼』『조영남쇼』, MBC의『세상사는 이야기』『수요스페설』등 다섯개의 토크쇼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이처럼 방송사들이 앞다퉈 토크쇼를 늘리고 있는 것은 우선 싼 제작비에 비해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경제성이 있는 프로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이 토크쇼를 선호하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SBS의 개국으로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우선 시청률을 올려놓는데는 드라마나 쇼가 제격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제작비도 비싼데다 현재도 공급과잉이라는 지적의 소리가 높고 쇼도 10대 취향이 아니고 우선 시청률 올리기가 어려운데다 기존의 대부분 쇼가 10대 시청자를 겨냥한 프로들이어서 이와 비슷한 쇼프로를 늘린다는 것은 여론의 화살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성실성이 큰 밑천>
이런 여건에서 토크쇼가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방송사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토크쇼는 구태여 분류하자면 오락프로에 해당하지만 일면 교양의 기능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방송사들이 공공성을 무시하고 시청률 경쟁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토크쇼가 이런 장점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은 토크쇼를 신설하는데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다. 왜냐하면 토크쇼의 승패는 거의 진행자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토크쇼 진행자가 없기 때문이다.
방송전문가들은 이상적인 토크쇼 진행자가 갖춰야 할 자질로 ▲최소한 한가지 이상 신문을 수년간 훑어 보아온 정도의 풍부한 정보와 상식 ▲기본적인 유머감각과 어휘력 ▲상대의 얘기를 빨리 요약해 정리해 줄 수 있는 재치 ▲호감을 주는 외모 ▲사람에 대한 애정과 출연자에 대해 예습을 하는 성실성 등을 꼽는다.
그러나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이런 조건을 다 갖춘 진행자는 거의 없다. 특히 아나운서나 연예인들을 주로 기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폭넓은 상식과 정보소화력을 갖춘 진행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토크쇼 제작진들은『교수·변호사 등 식견을 갖췄다고 할만한 사람들은 대개가 엄숙주의에 빠져 진행자로서의 기본적인 연기력이 부족하고 연기력이 되는 연예인들은 상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진행자 선정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연예인 주로 기용>
이들은 또『아직 국내 토크쇼의 경우 대부분의 출연자가 점잖 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진행자는 되도록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연출해 줘야 마음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다』면서『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다보니 자연개성이 튀는 연예인들 쪽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국내 토크쇼에 보조진행자(Kicker:분위기를 띄워주는 사람) 가 유난히 많은 것도 진행자 혼자보다는 둘이 바람잡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의 토크쇼 진행자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바람잡는 능력」을 우선적으로 보고 선정한 듯한 느낌이다.
미국적인 토크쇼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자니윤은 우리말 발음이 서툰데다 자주「외설시비」에 오른 인물임에도 불구,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다소 어눌한 듯한 태도와 진솔성이 오히려 출연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게 하는 독특한 개성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는 평이다. 또 그는 다소 외설적으로 보이는 질문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하게 던지는, 힘이 있는 진행자로는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KBS의 『조영남쇼』, MBC의『이숙영의 수요스페셜』을 각각 진행하는 조영남과 이숙영도 자니윤과 비슷한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높이 평가돼 발탁된 경우. 조영남은『자니윤 쇼』의 보조진행자로 활약하면서 소탈한 웃음과 어눌한 몸짓으로「뛰어난 분위기 메이커」라는 평을 받았다. 이숙영은 KBS-2FM『FM대행진』을 맡으면서 보여준「어쨌든 튀는 개성」이 TV에도 통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기용됐다.
그러나 SBS의 주병진은 약간 다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개그맨 이경규와 함께「1분에 한번씩 웃긴」개그 순발력과 배짱을 인정받아 자니윤의 후임으로 낙점됐다.
정치인등 중량급 출연자가 나왔을 때 무력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나 제작진은『그래도 그만한 진행자가 없다』고 평가한다. KBS『밤으로 가는 쇼』와 MBC『세상사는 이야기』의 진행자 임성훈과 황인용은 특별히 튀는 개성의 소유자는 아니다.. 하지만 오랜 MC경력에서 쌓은 무리없는 진행솜씨가 돋보이는 인물로 프로그램의 성격도 진행자의 강한 개성보다 전체적인 균형이 강조되고 있는 편이다.
자니윤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프로그램 신설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을 맡아온 1세대들이다. 대부분 진행자 이름이 곧 프로 이름일정도로 진행자의 개성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격이 좌우되는 토크쇼는 진행자가 바뀌면 프로그램의 이름도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토크쇼 진행자의「자리」는 어느 다른 방송출연자보다 제작진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진행자는 선정에서부터 대본 구성·녹화·편집에 이르기까지 제작 전과정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대개 진행자가 원하는 출연자는 크게 무리가 없는 한 받아들여지며 섭외를 진행자가 직접하는 경우도 있다. 『조영남쇼』에 출연한 정대철 민주당의원과 탤런트 백일섭은 조영남이 직접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실제 프로진행을 할 때도 미리 짜여진 대본이 있지만 다른 쇼나 퀴즈프로 등의 MC에 비해 재량권이 월등히 많다. 토크쇼에 있어서 대본은 질문의 내용을 정해 놓는데 불구하고 언어선택과 순간적인 유머는 전적으로 진행자의 자유다.
어떤 진행자는 대본에 없는 즉흥대사를 많이 구사해 각본대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연출자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진행자들은『토크쇼는 최소한의 연출이 최대한의 연출』이라며 토크쇼는 진행자의 프로지 연출자의 프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연출자들은 아직 진행자의 자질이 전적으로 진행을 맡길 수준이 안되는 현시점에서는 진행자도 하나의 출연자 개념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회에 백만원선>
이처럼 토크쇼 진행자가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출연료는 다른 방송출연자들에 비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은 사람은 자니윤으로 1회에 2백여만원을 받았고 나머지 진행자들은 대개 70만∼1백30만원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달 수입으로 계산해봤을 때 주 2회 방송하는 주병진·조영남의 경우 회당 출연료가 1백만원을 조금 웃돌아 8백만∼9백만원, 주1회 방송에 회당 출연료가 1백만원이 못되는 이숙영은 3백만원 정도, 임성훈은 주3회 방송하지만 주당 출연료가 2백만원정도로 월 8백만원, 황인용은 주1회 방송에 1백만원이 채 못돼 월 4백만원이 안되는 출연료를 받고 있다.
이같은 출연료는 50분짜리 드라마 1회 출연에 1백50만원을 받는 톱 탤런트들이 주2회 방송하는 주말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챙기는 월 1천2백만원보다 낮지만 쇼프로MC 출연료의 2∼3배, 방송국 중견PD의 연봉을 월수입으로 계산했을 때의 월3백만원보다 2∼3배 높은 수준이다. <남재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