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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특별한 관계’, 이어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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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미국 내 전쟁 지지자들의 찬사와 영국 내 비판자들의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이제 고든 브라운 신임 영국 총리가 블레어의 유산을 이어받을지, 부시와 거리를 두고 미·영의 ‘특별한 관계’를 접을지를 놓고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다.

 브라운은 미국인의 기업가 정신과 근면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부시의 믿을 만한 파트너’라는 블레어의 역할을 물려받는 데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블레어는 국제적 정치가가 되려고 했지만 브라운은 그런 야심이 거의 없다. 블레어는 과거 코소보 처리 문제나 북아일랜드에서의 외교적 성과에 고무돼 영국과 자신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 원했다. 2001년 9·11 테러로 부시가 지구적 차원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블레어는 그의 편을 들었다.

 블레어가 꾸준히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동안 핵심 각료였던 브라운은 외교 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꺼려 왔다. 브라운이 재무장관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총리로서 외교 정책을 챙기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영국군 해외 파병과 관련해 의회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겠다고 공약했다.

 브라운은 대신 국내 문제에 시간과 관심을 집중할 계획이다. 외교정책은 대부분 각료들에게 위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워싱턴이 싫어하는 인사들에게 외교를 맡겼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신임 외교부 장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비롯한 주요 국제 현안에서 전적으로 미국을 지지하던 과거의 방식을 일단 접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아프리카·유엔을 담당하는 마크 브라운 외교차관은 지난해 이라크 사태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영·미 관계는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기후 변화 문제에서 양국 간 이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블레어 정권에서 환경장관을 지냈던 밀리밴드는 올 6월 워싱턴 연설에서 기후 변화의 위협에 대처하기에는 미국 정부의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영국으로부터 더 큰 압력을 받을 것 같다.

 둘째, 브라운은 부시 행정부가 원하고 블레어가 지지했던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블레어는 유럽이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견제하고, 중동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브라운도 이에 동의하지만, 터키의 가입에 반대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대립하는 건 원치 않는다.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셋째, 런던을 세계 최고의 금융 허브로 육성하려는 브라운 총리의 의지는 뉴욕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 금융과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두 도시 간의 경쟁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그러나 브라운의 외교 정책은 아직 불분명하다. 그는 중국 문제나 중동 분쟁 등 주요 외교 정책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서 브라운은 ‘경제 결정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래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 개혁과 건강보험 개선,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영국의 역할은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브라운은 이라크에서 자국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블레어의 계획을 뒤집을 것 같진 않다. 영국은 연말까지 5000명 이상의 군대를 이라크에 주둔시킬 것이다.

 브라운이 이렇게 미국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더라도 블레어에 비해 미국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정도는 약할 것이다. 이 같은 선택으로 브라운 시대에는 영·미 관계가 과거보다는 덜 특별하게 될 것이다.

이언 브레머 국제 정치컨설팅사 유라시아그룹 사장

정리=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