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채택 숨은 주역 코틀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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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의 주역은 잘 알려진 대로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이다. 그러나 그를 뒷받침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숨은 주역 중 한 명이 민디 코틀러(사진)다.

워싱턴의 비영리 연구단체인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 소장인 코틀러는 올 1월 발의된 혼다 결의안의 초안을 작성했고, 2월 하원 외교위 위안부 청문회에서 네덜란드 출신 위안부 할머니 얀 루프 오헤른의 증언(본지 2월 9일자 11면)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코틀러는 지난해 초만 해도 위안부 문제를 잘 몰랐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4월 위안부 결의안을 다루던 데니스 헬핀 하원 국제관계위 전문위원이 연락을 했다. 레인 에번스 당시 하원의원(민주·은퇴)이 막 발의한 결의안을 검토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명문 여자대학인 스미스대에서 행정학과 역사학(중국 역사)을 공부한 뒤 예일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일본 문제를 연구해 온 코틀러는 그때부터 각종 사료를 읽으며 연구했다.

“공부를 하니 일본이 큰 죄를 저질렀고, 지금도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결의안은 적극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코틀러는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책임 없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료와 자료를 에번스 의원 측에 공급했다. 에번스 결의안이 폐기되자 혼다 의원과 호흡을 맞췄다.

코틀러는 위안부 청문회를 앞두고 고민했다. “한국 할머니뿐 아니라 외국인 위안부 할머니가 증언하면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료를 읽고 오헤른 할머니를 떠올렸고, 호주의 소재지를 파악해 연락했죠.” 코틀러는 그의 증언을 성사시키기 위해 여행경비도 부담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한인 단체들은 성금을 모아 경비를 보전해 줬다.

일본 정부는 결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가 여러 차례 사과했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충실히 다루고 있다”는 서한을 미 하원의원들에게 두 차례 돌렸다. 그때마다 코틀러는 “진솔한 사과를 한 적이 없으며, 일본 교과서는 왜곡돼 있다”는 반박문과 관련 자료를 하원의원들에게 제시했다.

딕 체니 부통령실은 6월 워싱턴 포스트에 “일본 책임 아니다”는 광고를 낸 일본 의원 40여 명에 대해 코틀러에게 물었다. 코틀러는 그들의 성향을 분석해 주며 “일본 의회 주류의 역사 인식이 이처럼 왜곡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측으로부터 몇 차례 협박을 받았고, 워싱턴의 일본 대사관은 물론 그들과 같이 일하는 미국인 등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지만 옳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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