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충주 이진용씨, 28년간 해마다 수천만원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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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저승까지 돈 가져가는 사람 있습니까, 쓸 만큼만 있으면 그만이죠."

충북 충주에서 통 큰 자선사업가로 통하는 이진용(李鎭龍.53)씨. 건축자재 도매업을 하는 그는 불우이웃만 보면 주머니를 열지 않고는 못배긴다. '필요 이상의 돈은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라는 것이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시청.동사무소 등을 통해, 또는 남몰래 불우 이웃에게 내놓는 돈만 연간 4천만~5천만원에 이른다.

李씨의 선행은 1976년 시작됐다. 제천의 한 초등학교를 우연히 찾았다가 모 재벌 총수가 이 학교 방문 기념으로 피아노를 기증한 것을 보고 "째째하다"며 모아둔 돈 2천여만원을 학교 담장 설치에 쾌척한 것이다. 이 돈은 당시 자신의 3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처음엔 호기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李씨는 점차 선행이 가져다주는 충족감에 빠져들었다.

李씨는 81년엔 가뭄 성금으로 2천3백만원을 충주시에 기탁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을 치료비 등으로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이후 재기할 때까지 7년간 막노동과 고추 장사를 하면서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달라"고 동사무소에 매달 20만원을 기탁했다. 이 돈은 3명의 어린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으로 쓰여졌다. 남편의 선행에 부인 윤영숙(48)씨도 묵묵히 따라주었다.

충주시 호암동에서 농사꾼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한 후 건재상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는 李씨는 "'단칸방에 사는 게 부끄러워 학창 시절 친구도 데려오지 못했다'는 딸에게 미안하지만 그 마음의 짐 때문에 더 열심히 살게 됐다"며 "앞으로도 형편 닿는대로 남들과 나누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충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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